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처녀 Apr 01. 2017

외로울땐 맥주 한잔

15. 부러워하다

영화 '스타워즈'와 만화 '스머프'의 배경이 된 동네, 카파도키아에 갔다. 터키에서 파묵칼레와 함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이 곳을 가는 날, 하필 이들의 가장 큰 축제인 '바이람'이 겹쳤다. 희생절이라는 이름의 이 명절은 원래라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양을 잡고 고기를 바치는 신성한 날이어야 했다. 그러나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 국가인 터키 답게, 많은 터키인들은 이곳 카파도키아에 놀러와서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전날 저녁 6시에 버스를 타고 산르우르파에서 카파도키아가 있는 괴레메 지역으로 출발했다. 버스에서 잘 자고 있는데, 돌연 "괴레메 나와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 운전기사는 캄캄한 밤, 도로 한 가운데 나와 짐을 내려놓고는 슝 떠나버렸다.


바깥의 기온은 10도. 주변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불꺼진 간판들이 적막을 더했고, 멈춘 주유소와 마트는 스산했다. 멈춘 주유소에 차 한대가 들어왔다. 얼른 뛰어가 그에게 물어보니, 카파도키아를 거쳐 다른 지역으로 간다고 했다. 귀여운 커플이 데려다주겠다고 말을 했고,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얼른 차에 올랐다.


그들이 내려준 곳에서 휴대폰으로 구글 지도를 확인해보니, 내가 가려는 카파도키아와는 4km가 떨어진 곳이었다. 새벽 3시, 걸어가는 길에 있는 숙소들에 들러 가격을 물어보니 하룻밤에 100유로라고 했다. 배낭여행자가 잘 수 없는 고급 숙소였다. 게스트하우스들이 있는 지역에 가려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20분이면 되겠냐는 나의 질문에, 건성으로 "Yes"라고 말하는 고급 호텔 직원의 태도에 기분이 안 좋아져서 일단 밖으로 나왔다.



구글 지도에 나를 맡기고 길을 따라 걸었다. 화려한 호텔이 늘어서있던 마을이 뒤로 멀어지며, 기암괴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달빛에 비친 울퉁불퉁한 돌들은 다른 행성에 와 있는듯한 기분을 준다. 우둘두툴한 자갈이 깔린 도로를 따라 조용히 걸었다. 도로 위로 쏟아지는 별들이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숙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론리플래닛에 적힌 한 곳의 숙소에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번호가 잘못 적혀있다"며 다른 숙소 사장이 나왔다. 그는 방이 하나 남았다며 비싼 방을 내밀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나는 그 방에 가기로 했다. 방은 깔끔했고, 나는 씻고 나와 기운이 다 빠진 채로 침대에 털썩 누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샤워를 하고 나오려는데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손잡이를 열심히 돌려 밀어도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옷을 가지고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라고 문을 크게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온 힘을 다 쓰고 있는데, 벌컥 하며 문이 열렸다. 고장난 문을 우연히 연 것이다.


컴플레인을 했지만 호텔 주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고 말았다. 화가 났지만, 나의 하루를 위해 참았다. 조식은 괜찮았기에 나는 과일 위주로 열심히 밥을 챙겨먹고 호텔에서 짐을 빼서 나왔다.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짐을 맡기고 시내에서 자전거를 빌려 본격적인 카파도키아 구경을 시작했다.


카파도키아는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볼거리가 가득했고, 넓은 대지에 솟아올라있는 '콘헤드'같이 생긴 기암괴석들은 이슬람 특유의 문양들로 꾸며져있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 바위를 파고 그 내부를 집 삼아 살았다고 했다. 차가 많지 않은 카파도키아의 도로를 자전거로 쌩쌩 달리며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나 한 시간쯤 지나자 다리가 깨질듯 아팠다. 너무 멀리 나온 탓에, 빌린 자전거를 반납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야했다. 면허가 있었으면 남들이 타는 작은 스쿠터를 빌렸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지인 만큼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구경을 다니고 있었고, 대형 관광버스들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외된 기분이 들면서 나는 외로워졌다. 나라는 여행자와, 카파도키아라는 공간이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유명하다는 피데(터키식 피자)집에 가서 작은 피데를 하나 시켰다. 옆 테이블에서는 여행을 온 한국인 가족들이 "여기는 항아리 케밥이 유명하대"와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피데는 이스탄불의 작은 골목 피데집에서 먹은 것보다 맛이 없었고, 가게는 너무 붐볐다. 허겁지겁 배를 채운 뒤 탈출하듯 나와 시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10여명의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있는 카페를 발견했다.


안에 들어가 터키 맥주 에페스를 하나 시켰다. 그리고 앉아서 바깥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는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오랜 지인들인 듯 그들의 서로를 향한 눈빛과 웃음에서는 따스한 기운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공유하는 온기가 부러워서 나는 맥주를 마시며 그들을 한참 쳐다보았다. 고독해지고 싶어서 떠나온 여행에서 나는 나의 고독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을 여행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