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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문하는여자 Mar 26. 2020

엄마와 친해질 수 있을까?

다 큰 딸의 질문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라는 두 글자를 확인하고 받을지 말지 잠시 고민한다. 몇 번의 벨소리를 흘려보내고 휴대폰을 잡았다. 나는 오늘도 엄마의 전화를 냉정하게 외면하지 못했다.


 “엄마, 왜?”

 “잘 지내나?”

 “그렇지 뭐. 왜 전화했어?”

 “요즘 언니 회사는 어떠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다들 힘들다던데  괜찮대?”

 “난 잘 몰라"

 “회사에서 마스크는 준대?"

 “난 모른다니까, 언니한테 직접 물어봐"


 결국 통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늘 이런 식이다. 엄마의 관심은 항상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언니의 회사 사정이 궁금하면 언니한테 직접 전화하면 될 텐데 나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보다니, 언니가 사업을 하느라 바빠서 전화를 잘 안 받는 걸 알지만 그래도 화가 나고 서운함이 밀려오는 건 이번 한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에게 전화해서 언니의 안부를 묻고 오빠의 안부를 묻는다. 언니와 오빠가 엄마의 전화를 잘 받지 않기 때문이다. 걱정과 잔소리가 많은 엄마의 전화를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패스해왔다. 오빠가 오랫동안 전화를 받지 않으면 엄마는 나에게 오빠 집에 가보라는 전화가 빗발쳤고, 언니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나에게 전화를 해서 묻고는 했다.  

 처음에는 엄마의 걱정도 들어주고 요구도 받아줬지만 내가 바쁘고 힘들 때조차 전화를 해서 언니, 오빠만 찾을 때는 제발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나의 안부부터 물어달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도 나도 변하지 않는다. 엄마의 전화를 외면하지 못해 전화를 받고 마음이 상해서 끊고 또다시 엄마의 전화가 오고... 20년째 도돌이표다.      


 사 남매의 셋째로 태어나 콩나물 심부름은 내 몫이었다. 장남인 데다가 유약한 오빠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자 일순위였고 예쁘고 똑똑한 언니는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막냇동생은 막내다움으로 오랫동안 엄마의 품을 차지했다.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나는 엄마 곁을 맴돌았지만 엄마의 품과 눈빛은 늘 다른 이를 향해 있었고 내 자리는 없었다. 자라면서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가 커갔고 어쩌면 지금까지 그 욕구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엄마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매번 냉혹한 엄마의 평가에 마음이 무너지곤 했다. 엄마를 위해 산 선물은 ‘뭘 이런 걸 샀냐’며 타박을 받았고, 내 신혼집을 보고 작다고 실망했으며, 둘째를 낳았을 때는 아들이 아니라 속상하다며 출산한 날 오지 않았다.

     

 한 심리학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충분히 사랑받은 자식은 성장해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부모 품을 떠나지만 사랑받지 못한 자식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 곁을 맴돈다.’ 내가 딱 그 꼴이다. 아직까지 엄마의 전화를 받고 관심을 기대하는 걸 보면 말이다.      


 특별히 엄마가 나를 미워했다거나 학대를 한 건 아니었다. 자식은 부모가 못해 준 것만 기억한다고 하지만 엄마와의 좋은 추억을 떠올려보려 해도 쓰디쓴 감정만 소환이 된다. 어릴 때 오빠의 밥그릇 밑에 달걀프라이가 숨겨져 있었고 고소한 참기름 향이 났다.  닭고기의 맛있는 부위는 내 차례까지 오지 않았고 옷은 늘 언니로부터 물려 입어야 했다. 고된 농사 일로 사 남매를 키워준 것과 대학공부를 시켜준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엄마의 사랑이 고팠다. 나도 옷을 사달라고! 나도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나도! 나도!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를 수없이 외치며 살았다. 그게 소용없는 외침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엄마와 나를 분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자꾸만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는 받으면 마음이 좋지 않고 받지 않으면 더 마음이 좋지 않다.


 결혼 후  엄마가 다 큰 딸의 눈치를 본다. 농산물이나 먹을 게 있으면 똑같이 나눠주려고 애를 쓴다. 나 또한 받지 못한 것을 원망하기보다 받은 것에 감사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해묵은 감정들은 가라앉았다가도 작은  돌만 맞아도 흙탕물을 일으키며 온 마음을 탁하게 만든다.


 엄마, 나에게 전화를 하면 나의 안부만 물어봐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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