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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문하는여자 Apr 28. 2020

좋은 질문이야

방송작가의 질문

 이상하게 몸이 무거웠던 아침이었다. 오전에 취재원과 전화 인터뷰가 잡혀있었는데 오전이 다가도록 이불속에서 뭉그적대고 있었다. 일인 방송을 하면서 수익을 내는 지역 크리에이터를 모아서 방송을 해야겠다는 기획과 섭외는 끝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취재와 원고를 남겨둔 터라 긴장감이 빠진 자리에 부담감 올라와서 의욕이 자리잡지 못하고 매주 반복되는 방송에 지친 상태였다.


 숙제를 하듯 취재 노트를 펼치고 통화를 눌렀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업 방송을 제작해 한 달에 2,300 정도의 광고수익을 내고 방송을 통해 농산물을 판매까지 한다는 젊은 농부와의 통화였다. 사전에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그가 농부라는 것, 농업 방송을 제작해서 적지 않은 광고수입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취재는 건조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Q.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 거예요?

 A. 아들이 셋 있는데 아빠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여주려고요.

 Q. 농사짓느라 방송 제작하느라 바쁘겠어요?

 A.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 가서 투석을 받아야 하는데 그래도 농사짓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다 해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그는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고 있고 신부전증 발병 당시 위암까지 발견돼 위의 상당 부분을 절개한 상태라고 했다. 전화 취재를 하기 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 통화를 하면서 적잖이 놀란 한편 작가로서는 월척을 건진 기분이었다. 나의 잔인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Q. 그럼 아이들에게 농사짓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것도 어쩌면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인가요?

 A. 그렇죠. 제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아들이 아빠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게 아빠의 모습을 남겨 놓고 싶었던 것도 있죠.


  담담히 내어놓는 그의 답을 듣고 바로 다음 질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인 데다가 담담한  그의 목소리에서 세 아이 아빠의 마음과 무게가 느껴져서 울컥했다. 아마 그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터뷰를 했다면, 대강 그의 대답을 짐작하고 있었다면 나의 마음이 그토록 요동치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이상하게 방전됐던 나의 에너지가 차올라있었다. 그의 생의 에너지가 전달되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투병만으로 힘겨운 삶 일터인데 그는 세 아들을 바라보며 남들의 세배쯤 되는 에너지를 내며 살고 있었다. 그의 에너지가 나에게 전달되어 그날은 마치 고 카페인 인스턴트커피를 세잔 마신 것 같은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출연자와 사전 전화 인터뷰할 경우 일반인의 경우 사전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가족관계, 방송 콘셉에 맞게 인터뷰를 해간다. 전혀 정보를 가지지 않은 채 궁금한 것들을 물어나가기 때문에 정해진 답은 없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답을 듣고 질문을 이어나갈 때 짜릿한 재미를 느낀다. 그런데 기사를 통해서나 방송을 통해 알려진 사람의 경우는 좀 더 심도 있는 인터뷰를 위해서 사전 조사 즉 자료 조사를 하고 난 다음 질문의 방향이나 깊이를 넓혀간다. 알고 있었던 내용일지라도 활자가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로 답을 들을 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구에서 손꼽히는 섬유기업의 회장님을 전화 인터뷰할 때였다. 녹화를 앞두고 추석 연휴를 끼고 있어서 연휴 동안 그분이 출연한 방송을 몇 편을 보고 대략적인 원고 작업을 해놓은 상태에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런데 막상 전화 인터뷰를 하니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닌 장황한 답변이 나왔다. 당장 녹화는 코앞이고 원고 작업은 해뒀는데 예상치 못한 답이 나오니 당황스럽기도 했고 조급증이 나서 슬슬 짜 놓은 각본대로 답을 유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장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방향대로 충분히 답하지 못했고 나는 듣고 싶은 답을 충분히 듣지 못해 서로 답답함을 느낀 채 전화 인터뷰가 끝이 났다. 미리 답을 정해 놓고 인터뷰를 하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체감한 인터뷰였다.


 답을 예측하지 않는 질문. 답을 유도하지 않는 열린 질문이야말로 가장 좋은 질문이 아닐까. 그래야만 반전이라는 녀석의 등장을 기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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