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초짜리 긍정적 상상이 진짜 뇌를 바꾸는 방법
회사 단체 채팅방에서 자꾸만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동료가 한 명 있다.
별말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 사람 이름만 떠도 마음이 먼저 굳는다.
어느 날, 그 동료와 점심시간에 나란히 앉게 됐다.
둘 다 말없이 국만 떠먹다가 어색한 기운을 못 견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프로젝트 진짜 힘들죠.”
그는 의외로 싱겁게 웃었다.
“그러게요. 저도 좀 버티기 힘드네요.”
그날 집에 가는 길,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오늘 점심이 아니라,
내가 미리 이 사람과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상상해 봤다면
조금 덜 긴장했을까?’
그리고 며칠 뒤, 상상과 뇌에 대한 한 연구를 읽었다.
콜로라도대학교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연구팀은
“상상”이 그냥 머릿속 그림이 아니라
뇌를 실제로 다시 세팅하는 작업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실험에 참여한 50명에게
자신이 아는 사람 30명의 이름을 적게 했다.
좋아하는 사람부터, 그저 그런 사람, 솔직히 좀 피하고 싶은 사람까지.
그중 애매하게 ‘중립’이라고 표시한 사람들을 골라
fMRI(기능적 MRI) 기계 안에 눕힌 뒤
이름을 하나씩 보여줬다.
그리고 이렇게 지시했다.
“이 사람이랑 아주 즐거운 경험을 하는 장면을,
혹은 정말 불편한 경험을 하는 장면을
8초 동안 최대한 생생하게 상상해 보세요.”
상상은 짧았다.
겨우 몇 초.
그런데 나중에 다시
“이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결과가 달라져 있었다.
상상 속에서 좋은 경험을 함께한 사람은
실제로 더 호감 가는 사람으로 올라가 있었다.
별다른 일을 함께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더 흥미로운 건 뇌였다.
연구팀이 뇌 스캔을 들여다보니
‘보상 예측 오류(reward prediction error)’를 담당하는
복측 선조체(ventral striatum)가 반짝였다.
원래 이 회로는
우리가 예상보다 더 좋은 보상을 받았을 때
“야, 이거 생각보다 좋네!” 하고 도파민을 쏟아내는 곳이다.
놀랍게도, 실제 일이 아니라
상상 속 만남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이 회로가 비슷하게 작동했다.
개별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데 관여하는
배내측 전전두피질(dorsomedial prefrontal cortex)까지 함께 움직이며
“이 사람,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새로운 인상을 뇌에 덧칠하고 있었다.
연구 1저자인 아로마 다바스는 이렇게 말했다.
“상상은 수동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선택할지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행위죠.”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일 발표를 앞두고
머릿속으로 수십 번 연습하는 사람,
첫 미팅을 앞두고
상대가 미소 지으며 악수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는 사람.
그 상상들은 그냥 기분을 달래는 위로가 아니라,
뇌 안에 “이 상황은 이렇게 흘러갈 수 있다”는
새로운 회로를 깔아 두는 작업에 가까웠다.
물론 상상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불안과 우울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최악의 장면을 더 잘, 더 생생하게 그린다.
“틀림없이 망할 거야.”
“저 사람은 분명 날 싫어할 거야.”
콜로라도대 연구에서도
특정 사람과의 부정적인 경험을 일부러 상상하게 했지만
이 경우에는 그 사람을 더 싫어지게 만들지는 못했다.
어쩌면 뇌가 이미 가진 부정적 인상 위에
몇 초짜리 상상을 덧칠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변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우리는 상상만으로도
어떤 사람을 ‘조금 더 좋아하는 쪽’으로
뇌를 살짝 밀어 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요즘 나는
마음이 껄끄러운 사람을 떠올릴 때
아주 짧은 상상 실험을 해 본다.
점심시간에 그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우연히 공감 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회의가 끝난 뒤
“오늘 발언 진짜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하는 장면.
현실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장면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복측 선조체도, 전전두피질도
그 사람을 새롭게 저장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크지 않다.
마음에 걸리는 동료,
어색해진 친구,
어쩐지 자꾸 피하게 되는 가족 한 사람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억지 칭찬이 아니라
조금은 가능해 보이는,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작은 좋은 장면 하나를
8초만, 정말 8초만 떠올려 본다.
과학은 말한다.
그 몇 초가,
당신 뇌 속에서 그 사람을 향한 길을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다른 방향으로 틀고 있을지 모른다고.
현실을 바꾸기 전에
먼저 상상 속에서 한 번 웃어 보는 것.
어쩌면 관계를 바꾸는 시작은
그 지점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이미 출발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