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고 싶은 밤, 유전자를 떠올렸다

수명 55%를 설명한다는 말 앞에서

by 전의혁

건강을 챙기는데도 마음이 자꾸 조급해지는 날이 있다.
퇴근 후 싱크대 앞에서 컵을 헹구고, 식탁 위 노트북 화면을 한 번 더 새로고침했다.
손끝은 차가운데, 머릿속은 계속 “내가 뭘 더 해야 하지”로 달아난다.


그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통제하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건강 이야기를 많이 듣고 난 날에 더 심했다.
혹시 당신도 건강검진 예약 앱을 켰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닫은 적이 있나?


그런 날, 한 문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1월 29일 《사이언스》에 실린 대규모 연구는 “유전자가 수명의 최대 55%를 설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존 추정치인 6%~33%보다 훨씬 높은 숫자였다.
이 말이 내 수명이 ‘55%로 확정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20260208 _ 수명 유전력 55% 장수의 ‘절반’은 유전이다 _ 2.png


내가 애써 쥐고 있던 핸들이 애초에 내 손에만 있었던 건 아닐지 모른다.


연구진이 한 일은 단순히 “유전이 중요하다”를 외친 게 아니었다.
연구진은 쌍둥이 데이터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사망 원인을 두 갈래로 나눠 분석했다.
사고나 감염처럼 바깥에서 벌어진 일, 만성질환이나 자연스러운 건강 저하처럼 노화와 얽힌 일.
그렇게 ‘섞여 있던 것’을 분리하자, 유전과 장수의 관계가 더 또렷해졌다고 했다.


제1 저자인 벤 셴하르는 “근거 없이 나온 수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쌍둥이 연구를 보면 대체로 50% 안팎이 반복된다고 했다.
폐경 시작 연령 같은 연령 관련 저하에서도 비슷한 값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의 모르텐 샤이비에-크누드센은 이 접근이 “외부 잡음”을 걷어내 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260208 _ 수명 유전력 55% 장수의 ‘절반’은 유전이다 _ 2-1.png


유전자는 ‘가능한 수명의 범위’를 먼저 그려놓는지도 모른다.


물론, 바깥에서 일어난 죽음이 전부 ‘유전자 밖’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었다.
벅 노화 연구소 에릭 버딘 CEO는 COVID 같은 감염으로 인한 사망도 유전자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감염에 대한 반응에서 유전자가 큰 역할을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셴하르는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건강 위험을 반영해 데이터를 다시 봤다고 말했다.
그렇게 다시 봐도 유전자가 기대수명의 약 50%를 여전히 설명했다고 했다.
그리고 100세까지 사는 사람들에 관한 기존 연구를 떠받치는 말도 보탰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게 아니라, 노화의 해로움으로부터 보호하는 보호 유전자를 가진 경우가 많다는 것.


지금까지 장수와 연관된 유전자는 FOXO3, APOE, SIRT6 등 소수만 확인됐다.
버딘은 수명이 단 하나의 유전자로 결정되기보다, 여러 유전자가 함께 작동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원인 하나만 찾으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라는 내 습관을 조용히 내려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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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생활로 돌아온다.


셴하르는 유전자가 55%를 설명한다면 남은 45%는 식이, 운동, 습관 같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버딘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일까 걱정했다.
하지만 셴하르는 “생활습관이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전자가 잠재력의 범위를 어느 정도 정해도, 생활습관에 따라 그 범위가 조금은 이쪽저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유전자가 ‘그려둔 선’이 있다면 생활은 그 선 안에서 나를 조금 옮긴다.


오늘 밤 나는 거창한 결심 대신, 아주 작은 행동 하나만 남겨두려 한다.
냉장고 문을 닫고, 내일 움직일 시간을 캘린더에 짧게 적는다.
유전이든 생활이든, 내 하루는 결국 이런 사소한 한 칸에서 바뀌니까.
복용 중인 약이나 치료를 바꾸는 일은 의료진이나 약사와 상의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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