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꾸 깜빡한다는 말

갱년기 뇌 건강에 외로움이 끼치는 영향을 밝힌 연구

by 전의혁

요즘 자꾸 깜빡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뭘 꺼내려했는지 3초째 서 있다.

회의 중에 분명 떠올랐던 단어가 입 앞에서 사라진다.

남편이 "아까 말했잖아"라고 하면, 말한 기억 자체가 없다.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다.

갱년기니까, 호르몬이 흔들리니까, 원래 그런 거라고.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른 생각이 든다.

깜빡하는 것보다 더 자주 느끼는 게 있다.

조용하다는 것.


20260323 _ 갱년기 외로움이 인지력을 8배 떨어뜨린다. _ 2.png


아이들은 각자 바쁘고, 친구들 만남은 올해 들어 두 번이었다.

퇴근하면 거실 불만 켜놓고 소파에 앉는다.

TV를 틀어도 소리가 배경으로만 흐른다.


혹시 당신도 비슷한 저녁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중국 산둥대학 연구팀이 폐경 이행기 여성 900명 넘게 조사했다.

폐경 이행기는 보통 45세에서 55세 사이, 에스트로겐이 출렁이기 시작하는 시기다.

안면 홍조, 수면 장애 같은 증상이 찾아오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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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이 본 건 호르몬이 아니었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었다.


외로움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

사회적 고립은 상태다.

실제로 만나는 사람이 적고, 관계망이 좁은 것이다.


이 둘을 따로 측정했더니, 각각 인지 기능 저하와 연관됐다.

둘이 겹치자 숫자가 뛰었다.

중등도 이상의 외로움에 사회적 고립까지 합쳐진 여성은, 인지 저하 위험이 8배 높았다.

가벼운 외로움이라도 고립과 겹치면 3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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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경로가 다르다고 했다.

외로움은 불안이나 우울과 맞닿아 뇌에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고립은 뇌가 받는 자극 자체를 줄인다.

대화가 없고, 새로운 정보가 없고, 누군가와 부딪히며 머리를 쓸 일이 없어진다.

두 경로가 동시에 뇌를 누르면 부담이 곱으로 커진다.


나는 이 연구를 읽고 나서 한참 멈춰 있었다.

깜빡하는 게 나이 탓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조용한 저녁이 뇌한테 어떤 신호인지를 처음 숫자로 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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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도 뇌를 위한 일이다.

거창한 모임이 아니어도 된다.

전화 한 통, 짧은 점심 약속, 그 정도면 충분하다.


오늘 연락이 뜸했던 사람에게 먼저 카톡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뇌를 위해서라기보다, 조용한 저녁이 좀 덜 조용해지니까.


※ 건강 정보는 특정 치료를 대신하지 않는다. 증상이 걱정되면 의료진과 먼저 이야기하길 바란다.



[출처]

Lin X, Zhao X, Liu X, Zhao D, Guo J, Li P. Independent and joint associations of loneliness and social isolation with subjective cognitive decline in perimenopausal women. Menopause. 2026 Mar 10. doi: 10.1097/GME.0000000000002763. Epub ahead of print. PMID: 4180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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