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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풍경으로 -

by 산들바람

첫눈이 옵니다. 기상 관측이래 11월에 가장 많은 눈이 왔습니다.

이곳은 117년 만에 최고의 적설량 무려 40cm가 넘는 눈이 내려서 학교는 오늘 새벽부터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재량휴업일로 해서 학교에 등교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지, 아니면 등교를 몇 시까지로 늦춰야 하는지, 점심 급식 차량은 재료를 공수하여 줄 수 있는지.. 모든 것이 오늘 아침에 긴급회의로 이뤄졌습니다.

새벽 5시에 걸어서 학교에 오신 선생님은 눈을 치워 아이들의 등굣길을 만드셨습니다. 일찍 오신 선생님들과 함께 교문 주변의 눈을 걷어냈습니다. 아이들이 걸어 들어오는 길을 만들고, 선생님들의 찻길을 뚫어놓습니다.


일찍 등교한 친구들은 어제부터 내린 흰 눈이 운동장에 소복하게 쌓여서 마음껏 눈사람을 굴려서 만들고 놉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흰 눈이 내려서 환합니다. 오늘은 웃는 친구들이 더 많아서 참 좋은 날입니다. 교정의 나뭇가지 위에도, 운동장에도, 그리고 나의 눈에도 눈이 내립니다.

쉬는 시간을 마냥 기다렸다가 종이 울리자마자 밖으로 나옵니다.


눈을 맞으며,

눈을 맞으며 웃다가,

눈을 맞으며 춤을 추다가,

눈을 맞으며 소리를 지르다가,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다가. (다치기도 합니다)

눈을 맞으며 싸움을 합니다.

모든 놀이의 기본으로 눈을 맞습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을 뭉쳐서 교실에 가져가 친구들과 장난을 하고 놀고 있습니다. 아름드리 나뭇 가지가 부러질 정도의 무게를 가진 눈폭탄이 어른들의 걱정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이 한 뼘씩 자라고 있는 소리일 것입니다.


학교에서 소리가 사라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진 학교는 무서운 고요 속에서 정지했습니다.

2020년 1월 겨울방학 중 갑자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시간 속으로 학교가 들어갔습니다. 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 때문이었습니다.

개학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학교를 올 수 없었습니다. 온라인 개학이라는 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숙제를 접하고, 아이들을 맞이하지 못하는 충격적인 마음도 추스를 새도 없이 새로운 수업의 형태를 받아들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학교마다 우왕좌왕 어찌해야 할지 모르면서 처음에는 영상을 찍어서 볼 수 있도록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실시간으로 접속이 가능한 zoom이라는 새로운 통로를 통해 입학을 하고, 개학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빨리 끝날 거라 처음에는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이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하다가 한 달, 그리고 두 달, 그러다가 일 년, 그리고 이 년, 무려 2022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가방을 메고, 학교를 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정말 정말로 신비로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중학교는 아침 9시경에 등교하여 4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급식실에서 식판에 음식을 담아 점심을 먹습니다. 오후에는 2~3시간의 수업이 끝나면 하교를 합니다. 등교와 하교,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점심 식사, 교실에서의 수업.. 이 모든 학교의 일상이 일순간에 정지되었습니다.

수업은 각자 집에서 아이들이 zoom을 켜고 입장하면, 선생님들이 비대면으로 출석을 체크하고 교과 수업을 합니다. 제가 근무했던 학교의 학생들은 집에 한 대의 컴퓨터만 있고, 형제들이 있는 경우에는 각자 자신의 컴퓨터가 없어서 줌수업을 들어올 수도 없어서 핸드폰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기도 하였습니다.

입장해 있는 친구들은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나 공부방을 보이지 않게 멀리 비추거나, 아예 화면 속에서 숨어버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도 밤늦게까지 많이 하게 되고, 아침에는 일어나지 못해 누워 있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학교는 수업을 하고, 시험도 치러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로망인 체육대회도 하지 못하고 축제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어떻게든 그 가상공간 안에서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자 하였습니다.

스승의 날이 되니, 언제 준비했는지 아이들이 영상을 찍어서 우리에게 사랑과 존경의 메시지를 담아 선물로 보내주었습니다. 눈물 나도록 기쁜 날은 그런 날을 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누구보다 멋진 배우였습니다.

우리도 화답하여 학생의 날에는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사랑한다고 하트를 날렸습니다.


칠판에 백묵, 그리고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정도로 수업을 하던 학교는 빠르게 온라인 수업 매체에 대해서 접하고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메타버스와 패들렛, 뤼튼, 캔바, Ghat GPT 등을 배웠습니다. 학교는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온라인 안에서 또 다른 학교를 만들어갔습니다.

그 안에서 가르치고, 공부하고, 숙제를 제출하고, 수행평가를 치렀습니다.

그 안에서 발표, 토론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관람도 하고, 놀기도 하고, 심지어 축제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온라인 수업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나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텅 빈 공허함에 허전하기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잘 지내는지 궁금했고,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마치 연극 무대를 바라보면서 객석에 앉아 언제쯤 주인공이 등장할까 기다리고,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022년 두 차례 개학을 연기하여 드디어 4월에 마스크를 쓰고, 조심스럽게 개학식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온통 너무나 감격스러움에 울컥했습니다.

학교마다 교문에는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너희의 환한 웃음으로 학교를 가득 채워주렴',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너희들이 와서 정말 봄이란다.", "그립다, 너희들의 웃음소리. 보고 싶다, 해맑은 미소"

가방을 메고 학교에 오는 학생들이 얼마나 소중한 줄 알았습니다. 한 명 한 명 마음으로 켜안으며 맞이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교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퍼진다 싶으면 다시금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해 가면서 마음 졸이면서 또 몇 달을 보냈습니다.


오늘처럼 아이들이 눈싸움하면서 서로의 존재로 힘을 더할 때, 우리는 신이 납니다.

복도에서 만난 어떤 학생은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혼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 어땠니?“ 물어보니, "재미없었다고, 눈이 와서 지루했다"라고 하네요.

"그랬구나"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날이기도 하지.. 그 학생 대답에 대해서 불쑥 들어오는 어떤 판단과 해석을 달고 싶은 내 마음을 꾹 누릅니다.

사람들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때의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유현준 교수님은 각자 다양한 생각을 갖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근본을 학교 건물에서 찾습니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의 전체주의적 사고는 담장에 둘러싸인 학교 건물 안에서 우리 아이들이 12년간을 지내기 때문입니다. 담장에 둘러싸인 건물로 또 하나는 교도소가 있는데, 두 곳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수감 생활하듯,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이고, 똑같은 옷을 입고, 점심때가 되면 식판에 똑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12년 동안 거의 똑같은 학교 건물의 3학년 4반에서 공부하다, 결혼해서 판형 아파트 304호에 살다가, 죽어서 납골당에 가게 되는 삶이다.” 공감이 되는 우리 학교의 현실입니다. 학교 공간이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외국의 학교처럼 보다 편안하고, 아름답고, 다양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그런 날이 오길 올까요? 언제쯤 우리의 학교는 그런 공간을 그려볼 수 있을까요?


https://youtu.be/6 LVvGl3X7-Y? si=Wx36 ERh5 Sp-k_8Vn


며칠 전 학교 중앙 현관에 학생들이 그린 우리 학교 전경 작품들이 걸려 전시되었습니다.

봄 나절에 아이들이 작은 스케치북을 하나씩 들고, 미술선생님과 함께 아기 오리들 마냥 학교 교정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눈에 비친 학교를 그렸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른들이 생각한 것보다 아이들은 학교를 아름답게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장 시멘트로 꾸려진 스탠드 좌석은 멋진 대리석기둥이 즐비한 성의 통로처럼 보이고,

수돗가와 주차장도 아름다웠고, 태극기와 학교의 교기가 날리는 정면의 모습도 참 단정합니다.

실은 우리 어른들만 이렇게 학교 건물을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림 작품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If you were to say to the grown-ups: "I saw a beautiful house made of rosy brick, with geraniums in the windows and doves on the roof, " they would not be able to get any idea of that house at all. You would have to say to them : "I saw a house that cost $20,000." Then they would exclaim : "Oh, what a pretty house that is!" - 어린 왕자 -


다시 학교를

우리 아이들의 눈으로 둘러봅니다.

아이들이 놀다간 운동장에는

하늘에서 눈이 내립니다.

땅에는 수많은 새싹의 눈들이

이제 막 잠들려고 하는데.


'내가 있을 때, 너는 없었고

네가 없을 때, 나는 있었다

하늘 눈이 소복한 솜이불로

꽃으로 피어날

땅에서 올라온

새싹 눈을 감으라 하네요.


https://youtu.be/cAxE4DcZths?t=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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