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잡이 11편 / 불안을 꾸준함으로 발효하면 숙성된 삶을 얻는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빠름의 가치에 마음을 그다지 빼앗기지 않았다.
행동의 효율은 따졌을지언정 그저 뭔가를 더 빠르게 얻어내거나 이룰 수 있다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았다.
해야 하는 것이 주어졌을 때 속도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지인들이 주변에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아니, 훨씬 더 많아진 것 같다. 회사든 일상 모임이든.
그리고 나는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이 주제에 있어서는 생각이 그대로다.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원하는 토익 점수를 얻어내는 방법은 존재한다. 더 빨리 10억을 모으는 방법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빠르지만 빠른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너스 요소를 배제해 버린다. 내실이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결과만을 빠르게 획득하려 하는 태도나 행동은 그 역효과로 본질의 퇴색과 퇴행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눈앞에 보이는 ‘빠르게 얻어낸’ 결과만을 플러스 요소로 받아들이며 자축하길 반복하니, 어느새 그러한 행동 양식이 고착화되고 만다.
불혹이 된 지금도 나는 은은하게 나아가는 ‘느린 꾸준함‘의 가치를 굳게 믿는다.
빠르게 꾸준하면 되지 않느냐고? 되지 않는다.
만원의 가치를 모른 채로 일확천금을 얻은 자는 그만큼의 돈을 쉽사리 잃게 되어 있다. 포핸드 백핸드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상한 자세로 서브 득점을 몇 차례 해냈다고 해서 훌륭한 테니스 실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마음 약한 친구를 빠르게 굴복시켰다고 해서 리더십 있는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진정한 꾸준함은 그 절차를 차곡차곡 계속해서 반복 수행할 경우에만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내가 생각하는 불혹이란, 빨리 익는 법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천천히 깊어지는 법’을 배우고 삶에 녹여내는 시기다. 불혹잡이 이번 편의 소재인 항아리는 기다림의 철학, 발효의 미학, 내면의 에너지 저장소 등을 의미한다.
외갓집 대문 주변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나는 시골집을 떠올릴 때면 그 항아리들도 함께 한 덩어리로 머릿속에 그리곤 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간장, 된장, 고추장, 식초 등의 식재료가 주로 항아리에서 만들어진다는 것과 마트에서 파는 그것들과는 차원이 아예 다른 물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 있었다. 느리지만 강력한 시간의 힘을 조금이나마 깨닫고 경탄하게 된 것은 그때쯤인 것 같다.
어르신들 사이에서 도시농업 강의를 듣기도 했고, 천연발효식초 제조법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내 손으로 만든 식초를 처음으로 맛보았을 때와 그 식초를 1년이 넘도록 사용하면서 받은 감동은 아직도 혀 끝과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다.
미생물은 천천히 느린 속도로 식재료를 잘게 부수며 유익한 균을 생성한다. 그 과정에서 공장에서는 찍어낼 수 없는 자연의 맛을 만들어 낸다. 직접 맛을 비교하거나 요리에 사용해 보면, 그 둘은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발효의 법칙이 우리의 인생 곳곳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항아리가 항시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매번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체된 것은 아니다. 항아리 속 발효는 멈춘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변화를 겪어내고 있다.
불혹이 되어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나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조용히 보이지만, 나의 일상 루틴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다.
도전하는 불혹이란 일종의 ‘숙성기’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배우고 깨닫고 얻은 그 모든 것을 더 깊이 익히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새싹이 움트기도 하는 시기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힘들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 더 웅장하고 역동적인 모습이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시기임에도 그 어느 때보다 더 멈춰진 듯 보일 수밖에 없기에. 왜 그렇게 멈춰있냐고 ‘걱정과 관심이란 이름으로’ 한심스럽게 바라보며 던지는 조롱이나 핀잔이 주변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항아리 속 발효가 제대로 보일 리가 만무한 사람들과 뒤섞인 사회 속에 살고 있기에 이것은 감수해야 할 문제지만, 그냥 매번 쿨하게 받아넘기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본인이 선택한 길이기에, 그 무시들을 그저 ‘걱정’이라 여기며 그 조차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이 시기를 꿋꿋이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 ‘인내와 숙성의 골짜기’를 말이다.
다시 못 올 소중한 시간이라 여기는 게 좋겠다. 인생의 숙성기에는 주변의 인정이 줄고 손가락질은 많아지지만 그의 진짜 향기가 배어 나오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 되는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믿어주면 된다.
정체와 숙성은 다른 것이란 걸. 눈에 띄지 않아도 안에서는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항아리 안의 미생물은 항상 불안정한 상태에서 발효를 시작한다.
처음엔 알 수 없는 냄새가 풍기고 거품도 일어나고 분자들이 미세하게 뒤섞인다. 그 과정에서 부패의 리스크도 물론 있다. 그것을 시간이라는 자원을 통해 이겨낸다. 그 결과로 유익균이 살아남아 정착하게 된다.
불안정을 안정 상태로 만들고, 큰 것을 작게 쪼개고, 조금씩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발효의 기본인 것이다.
인생의 불안과 혼란도 이와 같다. 불혹의 도전 또한 고급 재료의 발효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안과 혼란이 오히려 발전과 성장의 연료가 된다. 이들 덕분에 나는 ‘부패하지 않고 발효’가 된다.
불안정 속에 시간이 더해졌기에 더욱 나다운 맛과 향이 추출되고 있는 것이다.
발효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항아리를 식재료로 끝까지 가득 채워서는 미생물이 제대로 활동하기 어렵다. 재료를 채우더라도 윗 공간은 어느 정도 비워두는 것이 보편적이다.
발효와 결을 같이하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중과 몰두의 긴장된 시간으로만 생을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불행히도 우리 한국 사회는 어떤 삶의 정답 같은 것이 굳어져 있어서 그 정답의 문으로 모두들 달려가야 하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주변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일정에 빈 공간이 없고 마음에 빈 공간이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또한 시간을 타고 옳은 방향으로 숙성이 되어 점차 나아지리라 기원한다.
나 또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해야 할 일과 목표로 가득 채우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히 욕심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항아리와 발효의 원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적당히 비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을 모두 일정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필요하다면 짧은 낮잠도 자고 뉴스도 본다.
한 주 전체를 봐도 그렇다. 수요일과 일요일은 ‘점검’의 태도로 큰 욕심 없이 꼭 할 일만 완수하며 생활한다.
한 달도 마찬가지다. 셋째 주는 전반적으로 보완, 점검의 태도를 부여한다.
일정을 가득 채워서 빨라지는 것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비움 속에 더 묵직한 진전이 일어난다.
비워야 채워진다. 그리고 채워지면 비워내야 한다.
항아리에 빈 공간을 두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적절한 시기에 세척을 하는 것이다.
어떤 재료의 발효가 끝나고 다른 용기로 옮겨 담고 나면 그 항아리에 다른 재료로 발효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세척을 하고 짚불로 연기를 내서 항아리를 초기화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때, 똑같은 개인이라고 해서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는 곤란하다. 초기화까지는 필요 없겠으나 또 다른 버전의 나로 숙성시키기 위한 ‘인생 발효’의 준비 과정이 꼭 필요하다.
지금 내가 이 세척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10년 넘는 직장 생활이 그리 긴 것은 아니지만 짧은 기간도 아니다. 이 기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나를 격려하고 다독인다. 그러나 또한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내가 가진 강점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의 능력을 사회를 이롭게 하는 데 온전히 사용하지 못했다.
직장생활이라는 재료의 발효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발효 결과물이 아니었을 뿐, 훌륭한 식품이 되어 나를 건강하게 했다. 다만, 40 이후의 삶은 나 자신이 깊이 제대로 녹아 있는 물질을 만드는 데 쓰고 싶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불혹잡이다. 불혹을 제대로 잡아 내기 위해 준비하는 이 시기가 곧 항아리 세척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항아리를 적당히 비우고 세척하는 과정이 불혹의 새로운 삶이 맛있게 발효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
인내와 숙성의 골짜기를 거치며 발효가 진행되면, 굳이 내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향기는 멀리 퍼져나간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의 삶은 더더욱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방향을 잘 설정하고 한 발씩 꾸준히 나아간다면, 차분함이 오히려 단단함이다. 꾸준함이 오히려 쾌속이다.
급하게 끓이지 않고 서서히 익힐 것이다. 항아리 속 발효처럼.
시간은 나를 낡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깊게 만드니까.
나는 오늘도 내일도 내 안의 항아리에 시간을 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