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요리들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하여

by 숙제강박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제육부터 오징어볶음, 청국장, 순두부찌개 등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음식으로만 구성된 우리네 전통식당, ‘백반집’. 세상 모든 음식점이 다 없어지고 하나만 남아야 한다면 난 주저 없이 백반집을 고를 거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반대로 다른 음식점들은 우후죽순 생겨나는 반면, 요새 백반집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대로변에는 더더욱 없고, 골목을 한참이나 뒤져야 낡아빠진 간판의 작은 백반집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백반은 우리 어머니 세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들 아닌가? 그럼 누구나 쉽게 장사할 수 있을 텐데 왜 백반집이 점점 자취를 감추는 걸까?


요식업을 다루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의하면 백반집의 메뉴들은 다른 것들보다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간단다. 재료도 다양해 재고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으며, 고급 요리로 인식되지 않아 가격을 비싸게 책정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백반집을 지금까지 하시는 분들은 참을성이 대단하시거나 내 가게와 요리에 대한 마음이 대단하신 분들일 거다.


우리 집 바로 앞의 편의점이 망하면서 임대 쪽지가 붙었다. 여기 뭐가 들어왔으면 좋겠는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이런 상권에 절대 들어올 리 없는 스타벅스를 말했고, 나는 나이 지긋하신 부부가 운영하는 백반집을 선택했다. 회사를 다니는 아내 입장에서는 아니겠지만, 나처럼 육아휴직하고 동네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모름지기 식사를 해결해주는 식당이 최고다. 거기다가 질리지 않는 집밥 요리와 반찬을 만들어주는 백반집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누가 이런 구석탱이에 운영하기도 힘든 백반집을 차리겠냐며 혼자 체념하고 말았다.


나와 아내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자연스레 소금과 고춧가루를 어디다 뒀는지도 모를 정도가 됐다. 이제는 장모님이 가끔 주시는 반찬과 요리로 집밥의 향기를 느낄 뿐, 반찬과 요리를 데워먹기만 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또 요새는 배달음식도 꽤나 맛있어졌다고 위로하면서 몇 가지 다채로운 메뉴 풀을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나 먹고 나면 “먹었다”는 느낌보다는 “때웠다”는 느낌이다. 때운 끼니는 금세 잊히고 남는 건 기분 나쁜 배부름과 입안에 남은 짠맛뿐.


우리가 어렸을 적 먹던 음식들은 이제 어릴 적 요리를 해주던 엄마를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다. 아내가 서운할까 봐 말은 안 했지만 엄마를 찾아가기로 한 날은 아침부터 배가 살살 고프고 입이 심심하다.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호두를 넣은 꾸덕한 멸치볶음, 청각이 들어간 시원한 배추김치, 시래기 말고 다른 재료는 거의 보이지 않는 된장국, 거의 전라도에서만 잡힌다는 박대라는 생선구이 같은 간단하고 기본적인 음식들 때문이다. 물론 이제는 감히 이 음식들이 간단하다거나 기본적이라는 말은 안 한다. 특히 나물무침 같은 밑반찬들은 얼마나 손이 많이 갔을지 알고도 남음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는 점심에 과식을 하고 배탈이 나고, 저녁에 괜찮아졌다 싶으면 또 과식을 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가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엄마의 요리도 함께 자취를 감춘다는 것이 아닌가? 누가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처럼 레시피를 남긴단 말인가? 말 그대로 그 요리는 후대에 전해지지도 못한 채 있었던 적도 없는 것처럼 사라지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먼 미래가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로봇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식사 대용으로 입에 쑤셔 넣는 정체불명의 회색 캡슐.. 생각이 너무 멀리 갔나 싶은데, 어쨌거나 지금 나는 어릴 적 집밥이 먹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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