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카페를 가는 것에 대하여

by 숙제강박

나는 어려서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특히 중, 고등학생 시절이나 성인이 된 이후에도 군중 속에 있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려는 듯이 쉴 새 없이 집단을 찾아다녔다. 그중에서도 인싸들이 포진한 집단에 속해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소속감과 우월감을 느꼈고, 집단에 있지 않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집단에 가입했다. 내가 집단이고 집단이 곧 나인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속한 많은 집단들이 사라지고, 또 필요에 의해 새로 생기는 것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집단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집단은 변한다는 것과 나와 집단이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그리고 집단의 밖으로 나온 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단 밖의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나는 나에게 아무 정체성을 부여하지 못했다. 그제야 나와 내가 마주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했다.


오래전부터 홀로 있는 것을 즐기던 한 아싸 친구가 말했다.

“혼자 카페 가본 적 있어? 한 번 해 봐.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생각보다 느끼는 게 있을 거야.”


지금이야 혼자 카페를 가는 게 전혀 어색하거나 거리끼지 않지만 10여 년 전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나름 큰 결심을 하고 카페에 갔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카페에 앉아 뭘 한단 말인가? 혼자 앉아있는 게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혼자 앉아있는데 단체손님이 오면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줘야 하나? 한 잔 시켜서 오래 앉아있으면 카페 주인이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 등등 많은 고민들이 머리를 스쳤다. 유년기부터 카페를 자연스럽게 접했거나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성격인 분들이 보기엔 매우 시답잖은 고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자의식이 넘치는 20대 중반의 나이었고 뭇 남성들에게는 커피숍에 앉아 3천 원이 넘는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이 그리 친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친구의 조언대로 홀로 카페를 방문해 어색한 주문을 하고 어색한 구석 자리에 앉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어서 책과 공책을 준비했다. 책을 조금 훑어보고 공책에 뭔가를 끄적거렸지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천천히 흘렀다. 다른 테이블의 대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평소 아메리카노 한잔 놓고 친구들과 한 시간은 족히 앉아있었던 나는 혼자서 10분 만에 커피 한 잔을 비우고 30분도 안돼서 카페를 나와버렸다.


하지만 그 후로도 혼자 카페를 가는 연습은 계속됐다. 모든 일이 그렇듯 몇 번 하니까 별거 아닌 일이 되었고, 혼자 갔을 때 어느 자리가 좋은지, 뭘 하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지 등등 소소한 노하우도 쌓였다. 집단에 속해 있지 않은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고, 외부 환경과 나를 차단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카페에 있는 시간 동안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집단에서의 내가 아닌 혼자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하루 중 감사를 느꼈던 이유와 화가 났던 이유, 뭘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했다. 점점 내가 나를 선명하게 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는 하루 최소 두 시간의 명상으로 생각을 정리한다고 한다. 인류 역사가 담긴 머릿속 수많은 데이터를 한 가지 주장으로 관통시키는 비결이란다. 혼자 카페를 가는 것은 명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와 내 환경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솎아내고 줄 세우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나를 이루는 것은 나에 대한 데이터일 것이니 결국 그것은 나를 만드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단에서의 나는 선명하지만 집단 밖의 내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쉬운 조언을 하나 하자면, “혼자 카페에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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