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 살지만 파주를 더 좋아한다. 아내의 직장이 파주 출판단지에 있어서 종종 데려다주러 가곤 하는데, 파주에 가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 그런지 날씨도 올 때마다 쾌청해서 출판사 건물들 사이로 작게 난 길을 걷다 보면 외국의 오래되고 한적한 마을을 거니는 것 같다.
아내와 함께 미래를 그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도 파주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크고 우리가 서울에 적을 두지 않아도 될 정도의 커리어를 쌓으면 산이 잘 보이는 파주 어떤 곳에 주택을 얻고 싶다. 귀농이나 귀촌을 하기에는 시골살이를 해본 적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도시도 시골도 맛보면서 살 수 있는 파주가 제격이다. 서울에서 벗어나 호젓하지만 서울의 감성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서울로 달려갈 수 있는 거리의 도시. 아파트 단지와 주택 단지가 섞여 있고, 서울보다 더 세련되고 맛있는 가게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뛰노는 녹음 짙은 어린이집이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곳.
사람 하나하나가 차지할 수 있는 땅이 넓어 주차나 운전이 여유로워지는 곳. 심악산과 임진강이 어우러져 풍경이 조화로운 곳. 서울 살이에 질린 마음으로 파주를 좋아하게 돼버린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곳도 많은데 굳이 파주를 좋아하게 돼버린 건 분명 이유가 있다.
파주출판단지는 도서 출판을 콘셉트로 조성됐다. 그래서인지 단지 전체가 책의 느낌을 풍긴다. 우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행색에 대해 말해보자면, 이곳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수수하다. 상대적으로 안경 쓴 사람들이 많고 머리와 옷도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자들의 화장도 전체적으로 톤이 다운돼있고 밝은 머리로 염색한 사람도 드물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출판단지 카페에 앉아있다 보면 업무적으로나 사적으로 미팅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귀를 기울여보면 다들 조곤조곤한 말투로 귀여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한다. 이를테면 동화책 원고에 대한 이야기랄지 아니면 어떤 작가의 섭외 가능성에 대한 일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미팅이 심각한 분위기로 발전할지라도 목소리가 커지는 경우는 없다. 건물들과 그 사이로 난 길도 아기자기하다. 건물들은 각자 다른 모습과 크기로 이뤄져 있어 길을 걷는 내내 지루하지 않으며, 길은 좁지만 사람이 없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파주출판단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좋아한다면 분명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시간을 꼭 무엇으로 꽉꽉 채워 넣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