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생각은 바뀐다. 나는 어려서 신자유주의가 옳다고 믿었으므로 보수를 지지했었다가 점점 더 정치구조와 경제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진보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한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 젊을 때도 그랬어. 근데 너 그 생각 얼마 못 가. 나이 좀 더 먹으면 결국 보수가 맞는 거라고 알게 될 거야.”
생각과 가치관은 선형적으로만 변하지 않는다. 설령 선형적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생각도 멀리서 떨어져 보면 곡선으로, 조금 더 고차원에서 보면 나선형이나 산발적으로도 움직인다. 이전에 느꼈던 생각이나 가치관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갖는다고 해도 그 나름의 시간의 겪은 후의 생각과 가치관은 이전의 것과 다르다. 물론 이것이 이전보다 낫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는 없다. 시간에 따른 위계는 없다. 그냥 다르다.
나 스스로는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충분히 복잡하다는 것을 안다. 누구나 스스로를 더 복잡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심리적인 편향도 있고, 그간의 경험이나 사유의 흐름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남들의 감정과 가치관을 평가할 때다. 단편적으로 보고 듣는 타인의 감정과 가치관은 그 뒤에 숨어있는 시간을 무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 저거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건데. 재는 이제야 저 생각을 하는구나. 그럼 다음 단계는 이거겠네.’ 삼차원의 세상을 이차원으로 보는 생각에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고도 싶고, 다음 단계의 생각을 미리 알려주면 더 쉽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조언이랍시고 말을 건넨다. 그런 생각의 흐름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선생이 제자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자주 갖게 된다. 의도는 좋았지만 그런 행동은 매우 고압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논리적으로도 틀렸다. 앞서 말했듯 생각의 흐름은 선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행동의 선한 동기 외에 어떤 것도 제대로 들어간 것이 없기 때문에 그 결과도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짙다. 결국 원하는 상황은 전혀 일어나지 않은 채 둘 사이의 관계만 악화되고 만다.
머릿속에 딱 한 가지 원칙만 담아야 한다면 나는 “생각은 선형으로 흐르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원칙에는 나의 감정과 가치관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겸손, 나보다 어리거나 위계상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한 존중, 많은 정답이 존재할 수 있다는 다원주의적 사고가 들어있다. 우리 사회가 흔히 겪는 첨예한 문제들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장자는 말했다. 사람은 그저 자신이 처한 맥락에서 각자 세상을 이해할 뿐이라고. 만고불변의 질서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