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우리 세 가족은 처가 근처로 이사했다. 처가에서 도보 5분 거리의 아파트다. 처가에서 반찬을 가져다주시거나 우리가 아이를 전달할 때면 걸어서 2분 거리인 중간의 횡단보도에서 만나게 된다. 4차선 도로의 반대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장모님, 장인어른이 건너지 않으시도록 신호가 바뀌자마자 부리나케 뛰어 짐을 전달받고 그 길로 뛰어 길을 다시 건넌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딱 5분이 걸린다. 어머님, 아버님뿐만이 아니다. 처가 쪽의 다른 식구들도 한동네에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큰길을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처가 옆으로 이사 온 건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아내의 회사 셔틀버스 노선에 마침 그 동네가 있었다. 아내는 아이를 시부모님이나 전혀 모르는 누구에게 맡기기 싫어했기 때문에 결국 처가 근처로 이사 가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대안이었다. 단지 내가 회사까지 왕복 3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작은 불편함이긴 했다. 결과적으로는 1년 정도 회사를 다닌 뒤 육아휴직에 돌입했으니 회사가 멀다는 불편함도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다.
처가 옆에 살면서 좋은 점은 앞서 말했던 처가 옆으로 이사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과 다르지 않다. 우선 아이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고 장모님께서 봐주시는 덕분에 마음이 놓이고, 거의 매일 국이나 찌개 하나쯤은 장모님께서 만들어주시니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은 저녁밥을 챙겨 먹을 수 있다. 그 밖에도 가끔 처가에 두어 시간 아이를 맡기고 아내와 외식을 즐길 수 있으며, 내가 하루 이상 집을 비울 때가 있으면 아내가 처가 근처에 있어서 안심이 된다. 아내와 장모님과의 관계가 한층 좋아졌으며, 장인어른도 나와 종종 술잔을 기울이시곤 하는데 예전보다 심심하지 않으신 눈치다.
물론 처가 근처에 사는 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단점은 꽤 치명적이다.
우선 처가에서 모르는 나만의 자유시간이 있을 때 밖을 나다니기 조심스럽다. 처가 식구들을 마주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동네를 마음 놓고 활보하지 못하고 집에 숨어 지낸다. 그나마 요새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조금은 어깨가 펴지긴 한다. 집도 언제든 어머님, 아버님이 번호를 누르고 들어오시거나, 집 앞을 지나가면서 불이 켜져 있는지 보실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내 가장 소중한 안식처가 돼야 할 집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낮에 집에서 불을 끄고 생활한 지 오래됐고 대로보다 골목을 걷는다. 오히려 차도 위의 다른 차들과 자연스레 섞이는 것이 들킬 위험이 적으므로 요새는 동네의 가까운 이동도 웬만하면 차를 이용한다. 물론 차를 이용할 때에도 처가 식구들의 차와 같은 차종, 같은 색깔의 차가 지나갈 때마다 실눈을 뜨고 운전자를 살핀다. 하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들이다.
두 번째는 처가 식구들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스무 명이 넘는 친척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다 보니 행사가 없는 달이 없을 정도다. 회갑에, 칠순에, 생일에, 결혼에, 돌잔치에, 별 이유 없는 모임까지. 어른들과의 식사를 꺼리지 않는 성격이지만 내가 원해서 하는 자리와 억지로 나가는 자리에는 분명 온도차가 있다. 조금 멀리 살았다면 자연스레 빠질 수 있는 자리도 꽤나 있을 텐데, 한 동네 살면서 행사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건 마음이 편치 않다. 실제로 내가 없던 자리에서 어른들이 나를 수 차례 찾으셨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세 번째는 내 살림이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제 장모님이 내 속옷을 빨고 개어놓으시는 것도 익숙해졌다. 살림을 도와주시다 보면 자연스레 냉장고 안은 물론 분리수거통까지 보시기 때문에 내가 어제저녁에 집에서 술을 마셨는지, 점심에 혼자 라면을 끓여먹었는지까지 쉽게 드러난다. 덕분에 나는 마치 펜션을 정리하고 체크아웃하는 손님처럼 외출 전에 항상 집을 점검한다. 속옷 빨래는 수건으로 살포시 덮어놓고 라면과 술병 쓰레기도 베란다 구석으로 숨긴다. 음식물 쓰레기가 있으면 마치 장모님께 버려달라고 하는 꼴이 될까 봐 내가 외출하면서 가지고 나가고, 화장실 변기와 배수구 청소도 잊지 않는다. 건조기에 남은 빨래도 개어 넣어놓고, 머리 말린 후 떨어진 머리카락까지 청소기로 훑는다. 그러다 보면 외출 준비에 한 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내가 불편한 점을 적어놓고 보니 장모님, 장인어른 입장에서도 내 존재가 참 불편하시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린 아이를 맡기려는 목적으로 처가 근처에 와서 살기 시작한 건데, 두 분 입장에서는 손주와 딸, 그리고 전에 없던 장성한 아들까지 맡은 꼴이니 말이다. 우리 부부는 남의 도움받는 것을 예전부터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결국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만 하는 일인가 보다. 요즘은 아이를 낳는 게 효도인지 불효인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