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애가 없어서 고민입니다

by 숙제강박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생길 줄 알았다 부성애란 것이.

엄마들의 그것처럼 나와 같은 핏줄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나를 휘감을 줄 알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웬 걸. 아이를 낳고 2년이 지난 지금도 난 부성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모르겠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아침에 잠에서 깬 따뜻한 아이를 온몸으로 껴안는 느낌을 사랑하고, 말을 곧잘 하기 시작한 아이가 하는 엉뚱한 말실수를 귀여워한다. 아이가 아프면 꽤나 신경 쓰이고,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서너 시간에 한 번씩은 걱정한다.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생각하던 부성애와는 거리가 멀다. 드라마에서 보던 아빠들은 아이의 사진을 사무실 책상에 붙여놓고 회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아이를 떠올리기도 하고 회식 중간에도 집에 있을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하루를 버텨내지 않던가. 굳이 드라마를 들먹이지 않아도 현실 속의 어떤 아빠들은 아이와 주말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그것을 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하고, 같은 포즈로 매일 사진을 찍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콜라주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하더라. 어떤 분들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준다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성공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천성이 집돌이긴 하다. 더군다나 회사를 다니던 8년 동안 나에게 주말은 그냥 낮에 쉬다가 저녁에 술 먹는 날일 뿐, 여행이나 나들이를 간다는 것은 큰 맘먹고 하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여행이나 나들이를 생각하면 그곳에서 보낼 행복한 시간보다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의 크고 작은 절차들, 돌아오는 길의 교통상황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게 한바탕 머릿속에서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실제로 여행에서 돌아온 듯 의욕이 싹 사라진 것을 느낀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년 남성 출연자들의 호르몬 수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호르몬 수치가 높을수록 의욕적이고 호르몬이 낮은 사람은 만사가 귀찮고 호기심이 없는 것이란다. 그걸 보고 나서는 호르몬 높이는 시술이나 생활습관이 있을까 찾아보기도 했다. 아이가 없을 때는 만사가 귀찮아도 사는 데 큰 지장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는 양상이 다르다.


‘의욕 없음’은 곧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다. 하지만 나에게 ‘의욕 있음’은 곧 체력 방전 및 스트레스다. 그 어느 쪽도 달갑지 않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확실히 가만있는 쪽이 더 쉽다. 그렇게 죄책감만 커지던 2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의 짐이 쌓였고, 아이도 어려서 뭘 못한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자랐다. 시간이 흐른 만큼 부성애란 것도 마음속에서 더 커졌어야 할 터인데 내 부성애는 무슨 일인지 그대로인 것 같다. 아직도 주말에 몸을 일으키기는 더 힘들고, 밖에서 모임이 있을 때면 아이 생각은 자취를 어디론가 감춘다. 그리고 집에 오면 미안한 마음에 집에서 아이에게 조금 더 웃어주고, 조금 더 말을 들어주고, 조금 더 책을 읽어줄 뿐이다. 우리 뒤끝 없이 착한 아이는 고맙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보며 웃어준다. 그게 더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언제부턴가 아버지와의 사이가 서먹해져 버린 나는 내 아이와는 친구처럼 지내리라 다짐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다짐이었다. 아내와 육아를 함께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다짐들을 무력화시키기 충분히 힘들다.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세웠던 육아 철칙들은 현실의 작은 돌부리에도 쉽게 넘어진다. 아이의 말썽에 소리를 지르고, 방치하고, 힘으로 제압한다. 아이에게 납득할만한 설명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어른이 말하면 들어야 한다는 억지스러운 주장으로 끝을 맺는다. 아이와 함께하는 내 시간을 CCTV로 찍어 다시 돌려본다면 부성애라는 것을 찾아볼 수 있을까? 나는 벌써 아빠인데 아직 아빠가 못됐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