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보이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by 숙제강박

내보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는 내 외모나 생활습관이 드러나고 말지만, 내보이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머리와 마음속, 지식과 가치관, 과거와 현재, 원하는 것까지 훤히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훨씬 더 적나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간단히 보여지기를 기대하고, 상대방 또한 암묵적인 조약에 의해 내 사진과 영상을 순간 훑어볼 뿐이다. 하지만 글은 그래서는 의미가 없다. 나는 공을 들여 글을 쓰고, 상대방은 공을 들여 그것을 읽어 내려간다.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을 내보이는 것은 마음의 장벽이 높지 않은 반면, 내보이는 글을 쓰는 것은 조심스럽다.

내보이는 글은 그것을 읽는 대상의 성격적인 측면에서도 부담스럽다. 그들은 사진과 영상을 즐기는 사람들보다 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나를 관찰한다. 글을 읽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믿기로는 그들이 꽤나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많은 글을 읽어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 글과 남의 글을 비교할만한 충분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의 글은 다른 글과 쉽게 비교된다. 또한 그들은 내 글만으로 나를 상상해 낼 수밖에 없다. 사진과 영상으로 나를 접한 사람들은 거의 완성된 나를 머릿속에 넣은 채 디테일한 부분을 상상으로 메꿔나가지만, 글만으로 나를 접한 사람들은 나를 상상해내는 데 거의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글만을 가지고 나를 처음부터 만들어낸다. 내 글만으로 이뤄진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실제보다 무척 어두운 사람일 거다.

내보이는 글을 쓴다는 것은 감정을 희생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자신이 맡은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힘들어했다던 연기자들의 소식을 듣는다. 연기자들은 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희생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더 심하다. 남을 위해 자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머릿속 모든 지식과, 기억들. 심지어 주위 사람들의 그것까지 끌어다 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주위에 빚을 지고 산다. 글을 쓸수록 갚을 일만 늘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문서화되지 않은 자신만의 내면을 꾸역꾸역 찾아내어 달래고 위로해야 한다. 그래도 다 내보인 것은 아니므로 나는 나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나로서 남아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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