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영어를 공부한 지 30년 가까이 되어간다. abc를 배웠던 유년기를 기준으로 한 거다. 인생의 90%를 영어와 함께 했지만 난 여전히 영어를 만족스럽게 구사하지 못한다. 학창 시절에 그래도 공부를 곧잘 해왔었는데, 영어만큼은 편해지질 않는다. 영어라는 존재를 떠올릴 때면 평생 끝마치지 못할 숙제를 침대 밑에 숨겨놓은 것 같아 마음 한켠이 턱 막힌다.
회사를 다니면서 영어에 대한 아쉬움은 더 커졌다. 미국 출장에서 직원들과 영어로 회의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나 영어로 작성한 메일을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보내야 할 때와 같이 외국인이 포함된 업무에서 영어는 언제나 발목을 잡는다. 창업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영어로 서비스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훨씬 더 큰 시장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는 외국인들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똑똑하고 기발한데 단지 한국과 한국어라는 좁은 우물에 갇혀있어 족쇄를 차고 시작했다고 느낀다. 그러다 보면 영어를 유창하게 쓰는 미국인을 부러워하는 마음까지도 생겨난다. 모국어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라니. 영어 스트레스는 사람을 바보처럼 만든다.
반면 한국어는 보통 이상으로 구사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 결론을 내는 것에 능하고, 글을 읽는 속도도 비교적 빠르다. 발음이나 맞춤법도 나름 신경 쓰는 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을 벗어나면 누구에게도 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마치 전망이 불투명한 특이한 학과에 진학해 그 안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는 느낌이다.
한국어는 인류의 0.8%만이 사용하는 일종의 암호다. 한국어라는 암호를 자연스레 구사하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만 통용되는 암호가 있다는 사실은 꽤 은밀하게 매력적이다. 나의 말과 글이 내 의도와 같이 해독된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나 안도감을 준다. 또한 나와 완전히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내 말과 글을 마주할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내가 보여지는 말과 글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한국어처럼 사고하는 사람이 된 것에도 감사한다. 겸손하고 사려 깊으며 낭만적이고 다면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 준 한국어에 감사한다. 감정과 사물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의 한글 단어들을 사용하고 그것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받는 순간을 사랑한다. 다른 언어를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다만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서 받아들여본 적 없는 나는 다른 언어를 단순하고 직관적이라고 느끼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