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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Oct 01. 2020

전통과 합리성의 경계에 대하여

명절이 다가오면 한 2주 전부터 마음속 어딘가가 불편해진다.

속을 긁어대는 친척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상다리 부러지는 차례상을 차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 마음속 명절은 절반 이상이 불편하고 거북한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해야 하는 일에 반발했다. 행동은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 때 이뤄졌다. 과학도 잘 모르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혐오했고, 종교라든지 미신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믿지 않았다. 그런 것을 실존한다고 믿는 사람을 보면 그들의 개인사라든지 그것을 믿게 된 계기를 궁금해하는 대신 사회 전체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는 원인을 해석하려 애썼다. 눈에 보이지 않고 측정되지 않는 감정과 같은 것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겼다.

그런 나에게 명절은 비합리성으로 도배된 지뢰밭이다. 아무리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다짐해도 결국 한 번은 지뢰를 밟고야 만다. 명절만 아니라면 가족 간의 다툼도 없다. 거의 모든 싸움은 명절에 발생한다. 명절은 전통과 합리성이 맞붙는 전장이다.

이번 추석은 그래도 잘 넘어가나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친척들이 시골 할머니 댁에 모이지 않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척에 사시는 부모님을 뵙지 않을 수는 없어 추석 당일에 찾아뵙고 저녁을 먹겠다고 했다. 추석 연휴 중 가장 메인인 추석 당일, 그것도 하루 식사 중 메인인 저녁 식사. 부모님의 입장을 고려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웬걸, 부모님은 추석 전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가 많이 나신 상태였다. 추석 전날 남편 쪽 집안에 모이는 것은 전통이니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코로나로 시골에 가지 않아 차례를 지내지도 않으니 전날 일을 도울 것도 없으며, 전통이 그렇다면 왜 미리 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인가, 따졌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당연한 전통에 합리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이런 감정의 소모를 겪고 나면 나는 천하의 몹쓸 놈이 되어버린다. 조상들의 소중한 전통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서양 제국주의 군대의 총사령관이 된 느낌이다. 내가 평생 옳다고 믿었던 합리성이 언제나 통용되는 것은 아닌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합리성이 합리적이긴 한 것인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 그 세대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것은 아닐까? 나는 합리적인 것을 추구한답시고 효율적인 것이나 하고 싶은 것만을 추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는 나는 이번 명절도 거북하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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