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숙제강박 Oct 08. 2020

생일 축하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길

오늘도 생일을 축하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카카오톡이 지인들의 생일을 종합해 알려주는 덕에 잊지 않고 생일을 챙긴다. 일로 만난 사람에게는 커피 쿠폰이라도 하나 챙겨서 보내고, 친한 사이라면 단체 카톡방에서 이모티콘과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생일 축하를 위해 시작한 대화는 네, 다섯 번 대화가 이어지다가 이내 끊어진다. 보통 “코로나 잠잠해지면 한 번 봅시다.”로 끝나곤 한다.

생일을 축하하는 행위가 이전에는 조금 더 의미가 있었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의 특성상, 당사자에 대한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주기는 힘들었다. 그 이유 덕분에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일이 의미가 있었다. 오죽하면 사귀는 사이에서는 밤 12시가 넘어 가장 먼저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 일종의 의무처럼 여겨지기도 했으니까. 모두 어렸을 적 일이다.

하지만 카카오톡이 생겨나고, 그것은 매일 누군가의 생일을 종합해 눈 앞에 대령했다. 이제 굳이 생일을 기억하지 않아도 매일 아침 생일을 맞은 누군가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은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선물까지 바로 할 수 있도록 서비스한다. “내가 생일을 기억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시켜줬으니, 너는 말로만 축하하지 말고 뭐라도 성의를 보여.”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나도 일 년에 한 번은 생일을 맞으므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이제는 생일을 축하받는 행위 자체로 큰 의미를 느끼지는 않는다. 생일을 종합해주는 기술이 없었던 예전에 비해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받는 입장에서 크게 고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그저 말 없던 단체 카톡방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가 다시 사그라드는 모습뿐이랄까? 오늘날의 모든 축하보다 오히려 그 옛날 내 생일을 뜬금없이 기억해주던 친구 하나가 더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요인 중 하나가 ‘애정결핍’이며, 우리가 사회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이유는 결국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과거의 내가 생일을 축하받을 때, 그리고 요즘의 내가 생일을 축하받을 때 느끼는 고마움이나 감동의 차이는 결국 그 안에 담겨있는 사랑의 차이이지 않을까? 생일 축하에 담긴 사랑의 양, 그것이 덜어진 정도만큼 감동도 따라서 적어졌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가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있다면, 이제 그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남아있긴 한 걸까?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생일 축하를 앗아간 카카오톡이 얄미울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전통과 합리성의 경계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