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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Nov 02. 2020

휴직한 회사 회식에 다녀왔습니다

휴직계를 내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지 어언 9개월. 얼굴 본 지 오래됐으니 이번 회식에는 꼭 참석해줬으면 좋겠단 얘기를 듣고 회사 회식에 참석했다.

코로나를 피해 어느 한적한 야외 식당에서 반갑게 얼굴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들부터 새로 전입 왔다는 후배, 몇 달 전 부임한 신임 팀장도 자리했다. 그간 쉬면서 친한 동료와 후배에게 이런저런 회사 소식들을 들어왔던 덕에 놀랍진 않았지만 어색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회사의 요즘 현안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대화에서 더 멀찍이 밀려났고,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를 듣는 대신 본능적으로 눈 앞의 소고기에 집중했다. 회사를 쉬면서는 자주 먹을 일이 없는 고급 메뉴인지라 쌈 싸기도 아까웠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좋았다. 회사 회식이고 뭐고 간에 나에게는 몇 달만의 제대로 된 외출인지라 신나고 들뜬 마음을 감추기도 힘들었다. 육아하며 힘든 점이라든지 회사 밖에서 보는 회사의 모습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 그 와중에 회사 특유의 보수적인 회식 분위기에도 오히려 정감이 느껴졌다. 팀장은 중간중간 “돌아올 거냐, 오면 할 일이 많을 거다,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인지 모른다.”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나는 그저 “당연히 가야죠. 새로 맡을 일에도 기대가 큽니다.”라는 형식적이면서도 의욕이 내비치는 답변을 전했다.

다만 조금 슬펐던 것은 회식에서 본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회사의 일에 대해 한없이 심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들.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윗 분들의 기대와 거기에 부응해야 한다는 응원인지 부담 전가인지 모르겠는 팀장의 전언, 팀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눈을 반짝이던 후배의 모습까지. 1년 전의 나도 저런 모습이었겠지, 생각했다. 회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날들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실수하면 내가 모자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 불이익을 받으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반대로 작은 칭찬이라도 받으면 하루 종일 존재를 긍정하게 되는 날들이었다. 무엇보다 뭐가 이상한 줄도 모르고 산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회사를 잠시 떠나 회사 밖 삶들에 자리를 내어주며 살던 나에게는 그 이상함이 마침내, 또렷이 보였다. 회식의 분위기와 말들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내가 아는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었고, 마치 삐걱대며 연기하는 인형들의 부조리극 같이 느껴졌다. 서너 시간 정도 인형극을 관람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의 풍경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 건 그래서였나 보다. 더욱이 귀갓길의 기분을 한층 우울하게 만든 건 3개월 뒤면 거기에 동조해야 하는 내 신세에 대한 한탄이기도 했을 거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나는 계속 무대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극에 합류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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