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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제강박 Nov 04. 2020

글을 쓰면서 생긴 변화에 대하여

방송국 pd를 꿈꾸던 대학생 시절의 일화다.

영상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영상을 직접 만드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교내 방송국에 들어가 이런저런 영상을 만들던 시절. 영상이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만드는 ‘영상 공식’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카메라는 두 인물을 직선으로 그은 선의 한쪽 180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180도의 법칙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체질적으로 공식을 외운다든지 하는 것들은 성미에 맞지 않았지만 영상의 완성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알아야 하는 것들이었고, 영상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공부했으며 적용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다.

그 얼마 후 혼자 영화관을 찾았던 경험은 기존의 경험과 완전히 달랐다. 그저 재미있기만 했던 영화가 다양한 영상 공식들의 집합으로 다가왔고, 나는 영화의 줄거리라든지 대사, 음악을 자연스럽게 느끼기보단 카메라 워크에 집중했다. “오, 이렇게 하면 컷을 줄이면서도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는구나.” 따위의 영화관에서 할법하지 않은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감독의 의도대로 작품에 푹 빠져 공감하는 말 잘 듣는 관객이 아닌 멀찍이 떨어져서 감독의 머릿속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깐깐한 관찰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서 변모하는 과정의 고통이라고나 할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같은 경험을 한다.

영상과 더불어 책 읽기는 내 삶의 큰 기쁨 중 하나였는데, 기존에는 책을 읽을 때 착한 독자의 입장에서 즐겼다면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내가 이런 글을 쓰려면 뭘 공부해야 하지?”
“이 문구는 나중에 인용하면 좋겠어.”
“이 책은 수준이 낮지만 많이 팔리기 위한 장치가 여기저기 숨겨져 있구나.”
이런 생각들로 책을 읽다 보면 책 읽기는 더 이상 공감이 아닌 자료 조사이자 시장 조사 따위가 되어버린다.

인생의 큰 즐거움이 되어버린 글쓰기. 하지만 녀석은 나에게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빼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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