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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Feb 19. 2020

D-150 | 나의 존엄과 미래에 관하여

3부 | 출사표를 던지다 - 퇴사하기 좋은 날

3부 | 출사표를 던지다

[그림12] 퇴사학교를 읽고 퇴사도 기획의 과정임을 깨닫다

아름다운 퇴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아름다운 퇴사란 무엇인가? 행사 기획을 하는 마음으로 나는 나의 퇴사에도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에 책 한 두권 읽을 까 말까 하던 내가 일주일에 책 2권씩을 읽기 시작했다. 1인 창업과 퇴사에 대한 책부터 시집, 인문학, 마케팅, 기획 관련 책들을 섭렵해나갔다. 물론 장수한 교장의 퇴사 학교도 독파했다. 처음엔 손글씨로 빼곡히 수첩을 채워가며 독서기록을 했다. 이후엔 그 양이 감당이 안되어 workflowy 에 '독서기록' 카테고리를 생성해 독서 메모와 나만의 서평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미친듯히 기록을 하다 보니 나중엔 다음 읽을 책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느낀 바 하나.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누군가의 명언은 순 거짓말이었다. 책 속에는 그 책을 쓴 작가의 길은 있었지만 내 길은 없었다. 결국 스스로 닦아나가야 할 내 길이었다. 어쩌면 책 읽는 행위 속에서 길을 발견할 실마리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내 퇴사의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D-150 | 나의 존엄과 미래에 관하여

[그림13] 돌아온 꽃봉오리, 올해는 낙엽이 떨어지기 전에 떠난다

동료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안 보던 신문을 읽고 가계부를 쓰고 이 회사에서 내가 했던 프로젝트의 홍보물을 괜스레 뒤적거려본다. 한 사업의 담당자가 되어 회사일을 내 일처럼 하던 열정 넘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매일 아침 커피 한잔과 함께 사직서에 적을 퇴사 사유를 고민한다. 퇴사자의 변이 늘 그렇듯 단순한 '개인 사정'으로 치부되는 것은 싫었다. 애정을 쏟았던 첫 직장이었기에 제대로 된 퇴사 이유를 밝히고 싶었다. 도대체 아름다운 퇴사란 무엇일까?


퇴사를 마음먹었던 '퇴사 시발점'부터 내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에서 남는 자투리 시간에 10분 단위의 To do List를 관리했다. 회사 업무에서부터 지인을 만나는 일정, 멍 때리는 시간,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점까지 기록하며 무엇이든 기록하고 그 어떤 실마리라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주말창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림14] 단골 카페가 주말창업준비본부가 되었다

막연히 내가 떠나야 할 이유만 찾다가, 주말 시간을 활용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연구하다 보니 의욕이 생긴다. 그렇다 나는 '딴짓'할 때 눈빛이 빛나는 놈이었지. 우선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회사에서 배운 일을 나열해놓고 비빔밥처럼 버무려 보았다. 매일 주말 동네 카페에 출근해 마치 카페 전세 낸 사람처럼 벽에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놓고 골똘히 생각했다(물론 나의 단골 카페는 죽치고 있는 것이 용인되는 스터디 카페였다) 책도 읽고, 딴짓도 하고 무의미한 공상에도 빠졌다.


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살리면서도 내가 즐길 수 있는 일, 주말에 딱 2시간만 투자해서 할 수 있는 보람찬 일, 과거에 내가 해왔던 일들 간의 연결고리들을 탐구했다. 온종일 카페에 있다 보니 카페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과도 친해졌는데 나중에는 카페 직원 뒤풀이에 참여해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다 결국 새벽에 귀가하는 날도 있었다.


회사에서의 극심한 매너리즘 속에서 절로 의욕이 샘솟는 '딴짓'이 필요했다. 판단기준을 독점하는 몇몇으로 인해 직원들이 낸 의견은 한없이 의미 없어졌던 장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터벅터벅 너털 걸음으로 회의실에서 빠져나온 축 처진 어깨의 나는. 내 존엄과 미래를 지키기 위한 작당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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