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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Jun 08. 2020

고된 일의 뒤편에는 각자 지켜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몸이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은 회색빛이었다. 마주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이어폰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던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전차가 움직일 때마다 의자에 늘어진 몸이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의지랄 것이 희미해진 상태. 누적된 피로와 하루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는 아침은 모두에게 힘겨워 보였다.


  글쓰기 모임이 있는 수요일이면 나는 회사 기숙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 7시 반에 대학가 인근 카페에서 시작되는 모임은 빠르면 10시, 늦으면 11시에 끝나기도 했는데, 그때는 공단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끊긴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잠자리에 누우면 이미 자정이 지나있는 경우가 많았다.


  공장 바로 앞에 붙어있는 기숙사라면 출근 직전까지 잠을 잘 수 있었지만, 집에서는 그보다 2시간은 일찍 일어나야 했다. 초겨울 아침 공기는 얼음장 같았다. 정해진 장소로 오는 통근버스를 놓치면 회사로 들어갈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긴 거리를 둘러가는 시내버스를 타서 지각을 하거나, 돈을 더 내고 택시를 타거나. 어느 쪽이든 그리 마음에 드는 선택지는 아니어서 나는 매번 두꺼운 외투를 입고 지하철을 탔다.


  다음날의 피로가 담보된 하루였지만, 그래도 잔업 없는 날이 있어 좋다고 생각했다. 기숙사에서 지내는 다른 친구들도 수요일이면 여러 약속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단순히 술 약속인 경우도 있었고, 나처럼 무언가를 배우거나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많은 직장인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바라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무엇을 하든 시간은 항상 부족하게 느껴졌다.


  *


  월요일보다 목요일이 더 힘들지 않냐? 지하철역에 내려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K가 말을 걸었다. 밝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의 얼굴에도 다크서클이 깊게 내려가 있었다. 너는 뭐 한다고 나갔냐? 애들이랑 술 마셨지 뭐. 다른 회사도 수요일엔 잔업 안 한데? 매일 하는 곳도 있고, 수요일 금요일만 안하는 곳도 있고, 아예 안 하는 곳도 있고 제각각이지. 우리도 좀 안 하면 안 되냐.


  나는 참지 못하고 길게 하품을 했다. K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대뜸 물었다. 니 얘기 못 들었나? 무슨 얘기? 다음 주부터 한 달 동안 잔업 안 한다. 어, 진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주문량이 없어서 기계 가동 안 한다더라. 때마침 통근버스가 인도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멈췄다. 모르는 사이 이런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니, 끈덕진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삶의 질이 올라가겠네. 우리야 그렇지. K는 그렇게 말하며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반장님은 엄청 싫어하던데. 왜? 가정이 있으시다이가. 저녁이 있는 삶이면 다들 좋은 거 아닌가, 가족들이랑 시간도 보내고. 말이 좋지 월급이 줄어든다이가. 아, 반장님뿐만 아니고 조립반 이모님들도 다들 걱정이 많더라.


  막연히 업무가 줄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시급제가 기본인 현장에서 잔업이 없으면 월급 차이가 컸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야 특별히 돈을 쓸 일도 없고, 산업기능요원 복무까지 더해지면 아무래도 일을 덜 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몸이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켜야 하는 가정이, 키워야 하는 아이가 있었다.


  *


  경제적인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회사에서 우리는 확실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현장실습생으로 입사해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한 이들 중에 지금 회사에 계속 다닐 거라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꼭 공부를 하거나 구체적인 활동을 하지 않아도, 다들 마음 한편으로 회사를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육체의 피로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우리에게 언제나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 같은 게 있기 때문이었다. 산업기능요원이 끝나면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지. 경력을 인정받으면 더 좋은 회사로 옮길 수 있겠지. 마음만 먹으면 대학을, 여행을, 또는 분명치 않아도 가보지 못한 어떤 미래로 갈 수 있겠지.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아니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을수록, 회사를 그만두거나 옮기는 선택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회사는 환승역이 아닌 도착지였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장에서 보내야 하는 건지. 겨우 익숙해진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지. 계속 월급을 받으며 지금의 생활이라도 유지할 수 있을지. 그들은 무엇 하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통근버스가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여기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삶의 무게가 쌓여있는 걸까. 오늘 내가 타고 온 지하철은 매일 아침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연과 이유를 실어 나르는 걸까. 왜 그렇게 많은 직장인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바라는지, 그 작은 바람조차 빛을 잃고 마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 도로의 차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만 달렸다.


  *


  한 달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서, 그동안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일을 적게 한다고 글을 더 쓴 것도 아니었다.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어 바람이 더 차가워졌고, 회사의 주문량이 원래대로 돌아와 다시 잔업이 시작됐다. 글쓰기 모임도 계속 이어져 목요일 아침에는 변함없이 피곤한 표정으로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역에 내려 계단을 오르자, 평소와는 다른 색채가 보였다.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아닌 그들을 붙잡고 무언가를 전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귀찮다는 듯 몸을 피하거나, 받은 전단지를 금방 놓아버렸다.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종이는 거리를 굴러다니며 펄럭이는 소리를 냈다.


  나는 의아해하며 낯선 이들이 내미는 전단지를 받았다. 그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다 그만, 발걸음을 멈춰버렸다.


‘위험의 외주화 중단하라’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그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단체행동 전단이었다. 이미 알고 있고,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너무 쉽게 그것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의 손이었다.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이, 누군가의 삶이, 그 삶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런 식으로 버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대가 있든 없든, 얼마나 살았든, 하루의 무게가 얼마나 고달팠든, 똑같은 사람의 목숨이지 않은가. 모두가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저녁이 있는 삶’도 아닌 그냥 ‘삶’의 빛이라도 살려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몸은 차갑게 식어있는데, 가슴 속에서 자꾸만 뜨거운 게 올라와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나는 왜 여기 서 있는 건지, 무엇하나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버려진 전단을 줍는 일이었다. 몸을 숙여 마른 낙엽처럼 흩어져 있는, 잊혀지고 외면되어 왔던 누군가의 삶을 하나씩, 하나씩 주워 모으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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