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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Aug 24. 2020

독서모임은 참가자를 불편하게 해야 한다

‘애정’은 자신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

   독서모임을 초창기에는 한 분의 참가자가 너무 소중했다. 모두의 마음에 쏙 드는 모임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이 있었고, 이를 실현 시키고자 부단히 노력을 했었다. 한 명씩 따로 커피도 한잔하면서 사적인 대화도 하고, 모임 외 뒷풀이 시간도 자주 가지면서 서로 간의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애를 썼다. 개인적인 시간은 많이 소비되었지만, 이런 노력 덕분인지 참가자 개개인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었다. 지인 추천을 통한 인원 충원이 자주 되었고, 자연스레 모임의 규모가 커질 수 있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이전처럼 한 명 한 명에게 쏟을 수 있는 관심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모두의 기대와 요구를 채울 수 있는 만남은 요원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참가자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해주셨다.     


   ‘저는 책으로 소통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런데 뒷풀이 자리가 너무 잦아지니깐 이 모임에 나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졌어요.’     


   ‘저는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 직장 밖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아요.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전문적인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깊이를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조금 더 책의 주제에 집중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다른 분들은 그냥 책만 읽고 참여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독서 초보자분들의 비중이 조금 더 많은 것 같네요. 저는 오랫동안 책을 읽어오신 분들과 책에 대한 풍성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뭔가 그런 모임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이 답변에서 나는 2가지 포인트를 찾아냈다. 사람들이 독서모임에 왜 참여하려는지 ‘동기적인 측면’과 독자로서의 ‘능력적인 측면’이다.     


   참여 동기는 제각각이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책으로 소통하고 싶어서’,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어서’,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한 지적 성장을 위해서’처럼 독서모임 진행자의 동기와 닮아있다. 하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고 설켜 있는 위의 답변에서 알 수 있듯이 각자가 중점을 두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진행자의 역할과 책임이라 하더라도 책에 집중한 깊이 있는 독서모임을 이끌고 싶은 진행자가 모임 외 친목을 위한 만남을 지속하는 것은 곤욕인 것처럼, 진행자의 의도와 맞지 않는 동기를 가진 참가자와 계속 함께 하는 것도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독자로서의 능력적인 측면은 ‘내공’이라는 단어로 정의 할 수 있다. 모두가 깊은 내공을 가진 참가자분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대화의 향연을 펼칠 수 있겠지만, 그런 분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란 정말 쉽지 않다. 게다가 이제 사회 초년생인 2, 30대에게 그런 내공을 기대하는 것은 아마추어 선수를 프로 경기에 뛰게 하는 것과 마찬가며, 모든 참가자가 독서 초보인 모임만큼 샛길로 빠지기 쉬운 만남도 없다. 개인적인 경험상 가장 분위기가 좋았던 모임은 2~3명의 내공 있는 참가자가 전체적인 대화 수준을 끌어주고, 1~2명의 적극적인 참가자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며, 남은 3~4명의 참가자가 성실하게 참여해줄 때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 결국 진행자는 내게 부족한 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는 참가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하면 이런 비율로 참가자를 구성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나름의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결국 시즌제로 운영을 하거나, 고정멤버로 지속을 하는지에 무관하게 모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과 참가자들에게 요구하는 참여도의 ‘기본값’을 도출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최저시급이 최대시급처럼 되는 모순을 겪고 있듯이 기본값이 참가자들이 발휘하는 퍼포먼스의 최대치가 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우리 모임은 어떤 책으로, 어떤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도를 보장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결국 서로에게 요구하는 ‘기본값’이 있는지의 유무에 달려있다.      


   여기서 ‘참가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면 참여율이 낮아지지 않을까?’ 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다. 매회 ‘기본’을 지키며 참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참가자들에게 기본을 요구하는 것 역시 서로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편하게 참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여율을 높이는 방법이라 판단했지만, 모임이 거듭될수록 참가자들이 너무 ‘편하게만’ 대하는 것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기대를 낮추기 시작하면서 모임의 퀄리티와 만족도가 낮아지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 역시 ‘모임’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본질적인 특징일까 하는 체념에 가까운 상태일 때 오랫동안 문화기획에 몸담아오신 어른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문화기획은 참가자를 불편하게 해야 한다. 손쉽게 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생각하면 불편할수록 이용률이 낮아질 것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불편함의 벽을 넘어선 가치와 즐거움을 제공한다면 진정한 ‘팬’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율은 방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처럼, 참가자들이 충분히 감당할만한 불편함을 제공하고 나름의 입장권을 얻은 이들끼리의 만남을 제공한다면 그 가치는 훨씬 크게 전달된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값이라는 입장권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자세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모임은 참가자들의 적극성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내가 어떤 노력을 하는지가 아니라,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애정’은 자신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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