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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Sep 03. 2020

"왜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좋은 논제는 무엇일까?

   모임을 진행할 때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가? 진행자가 사전에 질문을 정리해서 공지하는 모임도 있을 것이고, 모임 당일 참가자들이 서로에게 궁금했던 질문을 나눈 뒤 대화를 나누는 방식도 있다. ‘우리 모임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라며 거창하게 <논제>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도 있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결국 독서모임에서 다른 참가자들과 나누는 질문과 답변은 모두 다 논제라는 단어로 정의해도 무방하다. 유료 독서모임이 많아지면서 지불한 비용에 대한 합당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핵심대화 주제를 미리 정리해서 공지하는 등 ‘논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임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책에 대한 감상 포인트가 다르고, 서로의 수준도 다른 만큼 진행자가 사전에 질문을 정해서 공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없진 않지만, ‘기승전 자기자랑’으로 끝나는 수다가 아닌 독서모임이 되기 위해선 정제된 논제가 필수다.      


   조금은 극단적일 수 있지만 실제로 경험했던 모임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로 모임을 진행했을 때다.      


   모임을 처음 맡는 진행자가 있었는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을 때 이 작품을 읽고‘자기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힘든 순간을 견뎌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인생 책’이었기에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지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설렜다고 한다. 그래서 부푼 맘으로 해당 책을 첫 번째 선정도서로 선택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모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세계적인 다독자이자 작가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파울로 코엘료에 대해서 “내게 코엘료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표절을 일삼는 사람이고 돈벌이를 위해 문학을 파는 창녀다.”라고 평가했는데, 참가자 중 책에 대한 조예가 깊으신 몇몇 분이 망구엘처럼 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으셨다. 모임의 시작인 감상을 나누는 순간부터 책 선정에 대한 불만을 표하셨고,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이 책으로 왜 독서모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입장을 고수하셨다. 당연히 해당 모임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고, 첫 시작이 긍정적이지 않았던 만큼 해당 기수는 마무리 역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모임 초기였기 때문에 진행방식에 대한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던 시기라 ‘논제’에 대한 고민이 크게 없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책을 선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공유가 되지 않았으니 참가자들 또한 별다른 준비 없이 편한 마음으로 참석만 하는 수준이었다. 당연하게도 핵심주제에 대해 조금만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려 하면 벽을 만난 듯 이야기는 단절되었고, 심지어 거부감을 보이는 분들도 있으셨다. 개인적인 감상을 바탕으로 한 피상적인 이야기만 펼쳐지면서 대화는 겉돌았으며 ‘이 책이 좋았네, 안 좋았네’ 정도의 책에 대한 품평회로 끝나는 경우가 이어졌다. 게다가 지정도서가 신청 당시에 공지가 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 선정에 대한 불만을 매회 표현하는 분들이 발생했다.      


   이런 불확실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숭례문학당>에서 진행하는 독서토론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진행자가 아닌 참가자로서 온전히 모임을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고, 모임의 진행자로서는 우리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선정도서에 대해서 카페를 통해 논제가 사전 공유되었는데, 책을 다 읽지 못했다 하더라도 논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만 정리한다면 충분히 참여 할 수 있도록 안내되었다. 만들어진 논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이 들어갔는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사전에 공유된 논제는 질문에 대한 생각을 미리 정리해야 하는 압박감은 있었지만, 완독하지 않아도 모임을 즐길 수 있다는 심적 여유를 안겨주었다. 최소한의 준비를 마친 뒤 참석을 할 수 있도록 안내된 만큼 모임의 퀄리티 또한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이때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결국 독서모임을 독서모임답게 만드는 것은 논제이며, 좋은 진행자의 필수역량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다양한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 할 수 있는 수준의 논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매회 논제를 준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열심히 준비한 논제를 바탕으로 질 높은 대화로 꽉 채워진 2~3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 수고로움의 피로는 싹 가시게 마련이다. 게다가 ‘좋은 논제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모임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다 보면 자신의 내공이 한층 더 깊어지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하나의 도전과제가 생기는 것이다.      


   독서모임이 다 같은 독서모임이 아니게 되는 지점이 ‘논제’의 수준에 있으며, 독서모임의 제대로 된 재미를 발견하고 빠져들게 되는 포인트 역시 ‘논제토론’에 있다. 정제된 질문에 대한 정리 된 대화. 이것만이 뱉고 나면 그만인 이야기를 붙잡아 나의 머릿속에 저장하는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모임을 반년 이상 이어가다 보면 진행자로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경험을 대부분 하게 되는데, 스스로에게 ‘논제’를 만들어내는 도전과제를 부여하고 이를 멋지게 수행해나가는 방법을 통해서 첫 번째 매너리즘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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