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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Oct 30. 2020

독서모임 진행자의 책 읽기는 달라야 한다

참가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라

   모임 준비를 위해서 논제를 만들다 보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책을 빠르게 완독을 한 뒤 여기저기 살펴보며 질문을 어떤 식으로 본문 속 내용과 연결을 지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게다가 나의 읽기가 혹시라도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떨쳐버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많은 진행자들은 책의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한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배경지식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독서모임에서 다루는 이야기 주제에 대한 깊이가 다른 참가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심리적 부담감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책 읽기 이상으로 자료조사를 신경 써서 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독서모임 진행자의 책 읽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엘레멘트컴퍼니 최장순 대표의 <기획자의 습관>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해석의 층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움베르토 에코는 해석의 층위를 세 가지로 이야기한다. 먼저, 텍스트를 생산한 저자가 의도한 의미가 있다 (저자의 의미), 텍스트는 글, 영화, 회화, 미디어 아트, 건축, 음악, 행위예술 등 다양한 장르로 나타난다. 또한 사람 그 자체가 해독 가능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독자는 텍스트를 읽어낼 때 저자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애쓴다. 저자의 의도를 해독하는 수준에서만 텍스트를 읽고, 텍스트를 생산한 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정박시킨다. 그러나 텍스트는 일단 만들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기의 고유한 의미체계들을 만들어간다 (텍스트 자체의 의미). 또한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적 맥락과 지적 역량에 따라 자기만의 해석을 만들어간다 (독자의 의미)’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 – 텍스트 – 독자’ 사이의 적극적인 상호작용 속에 빠져든다. 여기서 배경지식, 이해력과 같은 개인차에 의해서 다양한 해석이 펼쳐지게 되는데, 해당 저자의 팬이 아닌 이상 그의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대다수의 독자는 철저히 텍스트만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해석하게 된다. 


   당연히 오독의 문제도 여기서 발생한다. 오독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독이 책 읽기의 가장 큰 매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독서모임에서 펼쳐지는 오독의 상호작용은 저자에게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겠지만, 재미있는 샛길이 되어 생각 이상으로 풍성하고 매력적인 대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다시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는 ‘해석의 세 가지 층위’를 바탕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진행자는 참가자보다 조금 더 책과 내용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독자들이 ‘텍스트 자체의 의미’를 기반으로 이해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저자의 의미’와 ‘독자의 의미’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처음 읽는다면 주인공 싱클레어의 치열한 성장 이야기로만 읽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가 정신적,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에 정신심리학의 권위자였던 카를 구스타프 융을 만났고, 그의 제자인 베른하르트 랑 박사를 만나서 심리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데미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과 상징, 내용이 융 심리학 속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독서모임 진행자는 단순히 개인의 성장에 집중해서 각자가 겪었던 어려움과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와 같은 일차원적인 질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페르소나와 에고, 무의식과 같은 대표적인 심리학 용어를 기반으로 각자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게 된다. 


   전문적인 영역까지는 들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독서모임은 그런 역할을 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된다.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문을 열어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그럴 때 비록 진행자는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다른 곳이 아닌 이 모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값진 경험을 참가자들에게 제공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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