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러너들에게 배운 것
“걷는 건 좋지만 달리기는 싫다.”
내겐 어릴 때부터 이런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어떤 것이 좋다, 싫다를 분명하게 가름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예전엔 “사람이 좋고 싫고가 분명해야지.”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기에 그래야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똑 부러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은 결국 자신의 변화를 틀어막게 돼버린다. 특히 어떤 행위나 사람을 ‘좋다’고 생각하는 건 별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그것도 때에 따라 다르지만), ‘싫다’를 이야기할 땐 입에서 내뱉기 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어쩌면 그것은 ‘싫을 수도 있지만, 좋을 수도 있다.’
달리기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게 된 건 덴마크 여행 도중이었다. 달리기를 일상에서 즐기는 수많은 코펜하게너를 보면서 내 바윗돌처럼 단단한 신념에는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덴마크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자전거 왕국이지만, 러너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다. 어른,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달리고, 또 달린다. 호텔에서도 투숙객을 위한 아침 조깅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우리 같이 뛰어볼까요?’라고 써 붙여진 엘리베이터 전단지를 보며 ‘응? 왜? 기껏 여행 와서 아침부터 힘들게 달리기를 하란 말이냐!’ 하며 내 안의 마음의 소리가 강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열흘… 아무렇지 않게 시내를 질주하는 러너들을 계속 보다 보니 조금씩 나도 달려보고 싶다는 맘이 자라났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만 가지고도 책을 낼 정도로 달리기에 진심이지 않았나. 달리기를 해야 글이 잘 써진다고. 달리기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 말이다. 달리기가 정말 그렇게 좋은 걸까?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주제였다. 여태 나는 달리기를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고 있었다. 대학생 때 나는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인공 세 명에게 모두 달리기를 시켰다. 주인공들은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삼선슬리퍼와 정장구두를 신은 채 푹푹 찌는 한여름의 골목길을 달려야 했고, 나는 가만히 뷰파인더로 그 모습을 담아내기만 하면 됐다. 주연배우들이 하드캐리한 덕분에 영화는 재밌다는 반응을 얻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북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남편과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잘 몰라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제대로 된 몸풀기 운동도 하지 않고 전력 질주를 했다가 무릎도 아프고, 한겨울에 덜덜 떨며 달리다가 감기도 된통 걸리고, 뜨거운 햇볕 아래 뛰다가 얼굴이 새까맣게 타다 못해 치아만 하얗게 반짝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힘든 것과는 별개로 내 몸과 맘은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달리기는 싫다’ ‘달리기는 체질에 안 맞다’ ‘나는 달리기를 못한다’ 같은 내 안의 신념들도 서서히 깨져가고 있었다. '나는 원래 땀이 잘 안 나'라는 단정이 우스울 정도로 나는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제는 달리는 시간, 코스, 옷차림도 적절하게 맞춰서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맞게 움직인다. 요즘 같이 덥고 햇볕이 따가운 때엔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뛰고 오면 딱 알맞다. 몸과 정신이 깨어나고 하루가 가뿐하고, 밤이 되면 졸리다.
달리기의 슬픔이 기쁨이 된 지금, 내일의 내겐 또 어떤 새로운 일이 다가올까 두려움보단 설렘이 앞선다. 평생 변치 않을 것만 같았던 달리기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처럼, “난 그 일(사람)이 싫어”라고 단정 짓는 게 있다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게된다. 어쩌면 그 일은 좋은 일일 수 있고, 그 사람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다. 좋은 일이, 좋은 사람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삶이 더 풍요로워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