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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Apr 25. 2023

슬픔으로 머무는 풍경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난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는 아팠다. 몸속에 병이 있던 몸으로 나를 가졌으니깐. 엄마 젖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엄마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동네 아주머니에게 젖동냥도 했다고 들었다. 몸속에 있던 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를 더 지배했고 첫돌을 일주일 앞둔 날 기어이 엄마를 정복하고 말았다. 그러니 원치 않은 세상에 태어난 나는 일 년 만에 엄마를 잃은 것이다. 육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엄마를 잃은 지 7년 만에 아빠마저 잃었다. 그리고 일평생 부모 없는 삶을 사는 중이다.


신이 모든 곳에 머물 수 없어 엄마라는 존재를 두었다는 문장이 있었지. 나 역시 그런 엄마가 필요했을 텐데 당시 누가 엄마를 대신해 나를 키웠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버지는 늘 바쁘셨고, 열다섯 살 차이가 나는 큰언니는 이미 인천에 일터를 잡아 떠난 상태였으니까. 내 기억 속에서 엄마 역할을 대신해 준 사람은 늘 나와 함께 있던 막내 언니다. 네 살 터울인 언니는 내 의식이 또렷하게 기억이란 걸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이다. 힘든 일도 기쁜 일도 늘 함께했다. 짜증 날 때도 화가 날 때도 언니에게 풀었고, 고민이나 걱정이 있어도 늘 언니와 함께 나눴다. 무더운 여름날 쭈쭈바가 너무 먹고 싶어 사달라고 떼를 쓸 때 언니는 거리에 버려진 빈 병을 주워 모으거나 집안을 샅샅이 뒤져 나오는 십 원짜리 동전을 찾아 어떻게든 나에게 쭈쭈바를 사주곤 했다. 그렇게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자 어릴 적엔 언니가 마법사가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갔다. 한 명 한 명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마침내 막내 언니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언니가 좋아했던 남자나 언니를 좋아했던 남자는 무조건 나의 적으로 간주했던 나는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언니를 보내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조가 큰 언니 매그의 결혼 결심에 “언니가 떠나는 게 싫어”라고 말할 때 격하게 공감했었다. 도대체 왜 결혼을 서두르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훗날 언니가 “ 당시엔 결혼만이 도피처였어”라는 말을 해서 무척 마음 아파했었다. 그렇게 언니의 짐이 되었다는 사실에 미안했고, 그런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나를 두고 결혼하는 언니가 야속해 미울 지경이었으니깐.


신혼여행을 다녀온 언니는 마지막으로 오빠네를 방문했다. 그날이 우리의 마지막 날이었다. 언니는 여행지에서 사 온 귀고리를 내 귀에 걸어주며, 우리의 마지막을 기념했다. 우리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해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언니는 형부와 함께 살아갈 서산으로 떠났다. 그날 밤 나는 미처 보내지 못한 엄마를 떠내 보냈다. 태어나서 일 년 만에 나를 두고 세상을 등진 엄마와의 이별을 그날에서야 한 것이다. 심장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슬픔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하룻밤을 쉬지 않고 울었지만,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슬픔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도 그때 알게 되었고, 눈물샘은 마음이 울기를 멈추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계속 눈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내 삶의 모든 슬픔이 거기에 있고, 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릴 적엔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안이라며, 어린애가 울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툭하면 눈물부터 난다. 아마도 그날 내 안에 갇혀 있던 슬픔이 단단한 벽을 뚫고 빠져나온 게 아닌가 싶다. 엄마 없이 아빠 없이 성장해야 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아픔과 고통 같은 게 그날 나에게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선 그 많은 눈물과 슬픔은 설명할 길이 없다.


<슬픔의 위안>이란 책에 다름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 슬픔의 폭풍우 한가운데에 있을 때 반드시 떠올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다시 유머를 즐기게 되리라는 것, 삶은 계속되리라는 것, 시계는 다시 똑딱똑딱 가고 별들이 다시 보고 싶어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숨 막히게 하는 슬픔의 미덕과 대결을 벌이는 중에도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당시에는 이 문장을 알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날의 터질 듯한 슬픔은 이후의 계속되는 삶 속에서 다시 별을 보고 싶어 하고, 슬픔 속에서도 맛있는 음식과 차를 즐기게 되면서 치유되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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