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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Jun 01. 2023

4학년 담임 선생님.

어른이 어른답지 못할 때 아이는 평생 그 모습을 기억한다.


국민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외모가 독특했다. 툭 튀어나온 입에 기다랗고 삐뚤삐뚤한 이가 어찌나 컸던지. 말씀을 하실 때마다 입술 사이에서 흩날리는 침은 또 얼마나 자주 밖으로 샜는지. 동그랗고 큰 눈동자에 짙은 쌍꺼풀까지 있었던 눈을 부라리실 때는 머프들을 잡아먹으려는 가가멜과 영락없이 똑같아 보였다. 마른 몸에 키가 크셨고, 언제나 말이 많으셨다.  상에 태어난 지 딱 10년(7살에 학교에 들어갔으니 4학년 때 10살이었다.)만에 어른의 실체를 마주하게 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오래도록 이분을 잊지 못하고 말았다.


학년이 시작되면, 반장 부반장을 뽑았다. 우리 때는 의례 공부 잘하는 남자아이가 반장이 되고 여자아이는 부반장이 되었다. 누가 정해 논 것도 아니고 투표로 선발하는 데도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표를 주었다. 마치 이미 다 정해진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마음속으론 다른 아이를 뽑고 싶어도 언제나 기준은 공부였으므로 저 아이는 반장이 될 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하니 안 되겠어. 하는 심판을 내리곤 했던 거다. 그러나 4학년 1학기 반장 선거는 여느 때와 달랐다. 누가 그런 바람을 불어넣어 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꽤나 민주적인 선거를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반장 후보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공부 잘하는 오 00이란 아이였고 다른 한 명은 먼저 아이보다 성적은 떨어지나 활달하고 재밌는 성격에 아이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고 거기다 잘생기고 친절하기까지 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반장이 되고 싶었던 건지 아이들이 반장 해보라고 부추긴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선거 당일날 그 아이는 오 00이란 아이와 함께 후보로 나와 당당하게 자신이 반장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발표했다. 오 00이란 아이 역시 학교에 들어옴과 동시에 맡았던 반장 역할에 익숙한 듯 차분하게 연설을 이어갔다.


반 아이들 대부분은 이미 두 번째 아이에게 마음이 가 있었다. 권위적이고 무뚝뚝했던 오 00 이를 더 좋아하는 아이는 별로 없었으니까. 투표가 시작되고 작은 종이쪽지를 받은 우리는 반장이 될 아이의 이름을 적어 냈다. 나 역시 두 번째 아이에게 표를 줬다. 개표가 시작되면서 두 번째 아이가 압도적으로 오 00 이를 앞서고 마침내 반장으로 선출되었다. 두 번째 아이는 쾌재를 부르며 좋아했고, 우리들 역시 공부만 잘하는 오 00을 떨어뜨렸다는 데 흥분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절망에 빠져 있던 오 00에게는 자신과 한편인 선생님이 있었다. 반장 선거쯤은 마음대로 바꿔버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선생님 말이다. 선생님은 개표가 시작된 이후부터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결과가 발표되자 기뻐하는 아이들 앞에 험상궂은 얼굴로 교단에 선 선생님은 호통을 치셨다.


" 너희들! 지금 반장 선거가 장난인 줄 아니? 학급 대표를 뽑는 거야. 인기남을 뽑는 거야? 엉? 반장이 아무나 될 수 있는 건 줄 알아? 우리 반을 대표해서 이끌어가야 하는데 공부도 잘해야 하고! 너 000이, 오 00보다 더 공부 잘할 자신 있어? 어? 너 진짜 반장 할 자신 있냐고?!! 할 수 있어 없어? 말해봐!!"



환호성이 울던 교실은 순식간에 침묵 속에 잠기고 말았다. 우리는 겁에 질린 새끼 쥐처럼 바짝 졸았다. 교실의 절대권력이었던 선생님의 말씀으로 죄인이 돼버리고 만 거다. 반장이 돼야 할 아이를 뽑지 않고, 잘생기고 재밌고 인기 있는 인기남을 뽑았다는 죄 말이다. 선거를 다시 하는 줄 알았으나, 선생님의 무서운 경고에 두 번째 아이가 울면서 자신은 반장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기세등등했다.


" 이것 봐라. 얘는 반장을 할 수 없다고 하잖아! 이건 진짜 심각한 거야. 반장이 될만한 아이를 뽑아야지!"



아무도 선생님 말씀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그것은 반역이었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의 힘을 얻은  오 00 이가 자연스럽게 반장이 되었다. 오 00이 말고 반장이 될 인물은 아무도 없다는 게 선생님의 지론이었고, 우리는 오직 공부를 가장 잘했던 그 애가 반장이 돼야 함을 인정하며 우리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뽑고 싶던 아이를 뽑는 게 죄인가? 하는 마음과 그래도 반을 위해선 공부 잘하는 아이가 돼야지 하는 마음이 충돌하면서 모호한 패배감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학기 내내 선생님은 차별을 일삼았다. 공부 잘하고 부잣집 아이들에겐 친절하고 다정했으며, 나처럼 가난하고 공부도 별로인 애들은 그냥 없는 아이 취급했다.


 학기 중간에 미국에서 살다 한국으로 온 남자아이가 전학을 왔었다. 한국말이 어눌한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홍역에 걸려 얼굴에 빨간 반점이 가득한 체 학교에 온 날이었다. 등치도 크고 뚱뚱했던 그 아이에게 다가가는 아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선생님은 아침 조례시간에 교실을 한 번 둘러보더니 나를 보시면서 그 아이 옆자리로 가라고 했다. 원래 짝이었던 여자애가 싫다고 한 건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홍역에 걸린 애 옆에 나를 앉히신 거다. 나는 화가 났다. 부모님이 안계서 서 나를 옆에 앉힌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판단이었을까? 그 남자애도 싫었고 선생님도 미웠다. 화가 난 채 툴툴거리며 앉아 있었는데 쉬는 시간 그 애가 손으로 내 머리채를 확 잡더니 마구 흔들어 댔다. 자기를 싫어하는 티를 냈다는 게 이유였다. 너무 아팠던 나는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수업이 시작된 이후에 울고 있었는데 수업하러 들어왔던 선생님은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듣고도 그 애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 애를 혼내 주실 거라 여겼던 나는 보호받지 못한 채 버려진 기분이었다. 1년 동안 단 한 번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던 분, 단 한 번도 약한 아이 편에 들지 않으셨던 분,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게 구는 걸 처음으로 목격한 나는 그해의 충격으로 그분을 잊지 못하고 았다. 불의한 사건을 마주 할 때마다 툭 튀어나온 그분의 입에서 침이 튀기던 장면이 떠올랐다. " 너희들 반장을 아무나 하는 줄 알아!!" 하며 호통치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며 세상의 부조리함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선생님은 그 후로도 단단한 보호막이었던 어른의 세상을 아이들에게 빼앗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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