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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Aug 16. 2024

지켜보는 시간.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 또는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한쪽 벽을 다 차지할 정도로 큰 그림 앞에 멈춰서 그들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일을 상상해 본다. 거대한 그림 앞에 선 나는 벌어진 두 입술사이로 빠져나오던 공기의 흐름을 끊어 놓고, 생각은 지우고 몸은 돌덩이라도 된 듯 굳어버린 채 서 있다. 그 웅장함과 아름다운 조화를 무엇이라 표현할 길이 없어 망막한 마음이 어지럽게 방황 중이다. 작가는 그런 시간을 허락하라고 한다. 아니 오히려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권한다. 예술이라 칭할 수 있는 모든 작품이 우리에게 전해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에.


사실 자연 앞에서도 그렇다. 넋 놓고 바라보는 풍경은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를 품고 있다.  굉장한 하늘 풍경을 보고 감탄했던 H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사진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눈이 보여줬던 풍경을 담아내기엔 휴대폰 카메라의 시선은 너무나 작고 초라했기 때문이다. 해서,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쳤을 땐 마음 안에 그것이 들어오도록 시간을 두고 바라보는 게 더 현명하다. 예술처럼 자연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에게 힘을 발휘한다. 풍경을 보기 전과 후에 나는 분명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곤 했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다. 작가들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꽤나 긴 에세이나 소설을 쓰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좌회전과 우회전 그리고 유턴이 필요했겠지. 사랑하고 아름다웠던 시간을 기록하려는 노력들은 예술작품 앞에서 침묵하며 머물렀던 시간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침묵을 글로 쓰려면 수백 장의 흰 종이가 필요할 수도 있다. 말테의 수기가 실제로 그런 유형의 소설이다. 작가는 일이 분 동안의 순간을 몇 페이지에 걸쳐 세세하게 묘사해 놓지 않았는가.



그래서 긴 책일수록 오랜 침묵의 시간을 거쳐 세상으로 걸어 나온다. 예술 작품 앞에 멈춰 서는 순간은 침묵의 시간을 통해 세상으로 나온 책을 읽는 순간과  비슷하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경이로운 순간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내면으로 들어와 힘을 발휘할수록 우리는 말과 언어 너머의 어떤 것을 품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반드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경험이 부족한 나는 대신 매일의 독서로 그와 비슷한 시간 속에서 머물며 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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