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또 나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들뜬다.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종교에 상관없이 그쯤 걸려있는 빨간 날, 크리스마스가 주는 설렘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벤트가 있다. 각종 시상식이다. 소위 덕질하는 이들은 '내 최애가 이 작품에서 열일을 했으니, 이런 상 정도는 받지 않을까?' 예측 해보기도 한다.
물론 모든 방송사들이 연말에 시상식을 열진 않는다. 지금 언급하려고 하는 백상예술대상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로 56회째를 맞이한 이 시상식은 지난 6월 5일 열렸다.
올해 여기서 유독 주목받은 사람이 있다.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다섯 살 수준의 지능을 가진 ‘동구’를 연기한 배우 이광수는 영화 부문에서 남자 조연상을 받았는데, 그의 수상소감이 이목을 끌었다. '죄송하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보통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용하는 ‘죄송하다’는 말을 그는 왜 수상소감으로 선택했을까? 물론, 이어진 그의 말처럼 남자 조연상 후보로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올랐기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죄송스럽고, 부담되었으리라.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이광수, 그는 엄연히 탤런트이며 배우이다. 무슨 말이냐면, 그 역시 자신의 연기를 인정받고 후보 명단에 오르기 손색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중에게 알려진 이른바 ‘개그맨’ 이광수를 허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철학의 언어는 이를 '시뮬라크르'를 가지고 설명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확립한 철학 개념이다. 어원적으로 복제품이나 모조품을 의미하는 ‘Simulacrum’이라는 영어단어와 뿌리가 같다. 다만 본 글에서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독자로 하여금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으므로 편의상 ‘이미지’로 대체하여 표현하도록 하겠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광수는 그가 ‘배우’로 데뷔한 사실과는 다르게 어느새 개그맨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이미지, 이 단어가 당신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 '원본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지를 꼭 부정적으로 보아야 하냐?’는 물음이 발터 벤야민과 같은 철학자로부터 제기된다. 왜 이런 질문이 등장했을까? 원본이 아닌 ‘이미지’ 역시 허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이광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가 연기한 영화 속 ‘동구’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가? 그렇지 않다. 동구는 영화 속 캐릭터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구는 허상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그를 보며 ‘공감’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 어떤 의미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들뢰즈는 ‘원본’과 ‘이미지’를 구분하는 행위는 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사진과 카메라의 등장이 ‘이미지’를 마음껏 찍어낼 수 있게 만들면서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고 쉬워졌다.
물론,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이것이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원본과 이미지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곧 ‘원본과 이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말과 상동인데, 이는 ‘원본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원본도 이미지도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배우로서의 이광수도, ‘개그맨’ 이광수도 사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원본도 이미지도 둘 다 소중하다‘
지금까지 늘어놓은 것을 고려해봤을 때, 이광수가 수상 당시 ‘죄송하다’ 말한 것은 그를 ‘개그맨’으로 소비해왔던 기존 인식이 전제되었기 때문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물론, 나는 이광수와 아무런 친분이 없다. 물어보려 해도 사실 여부는 파악할 수 없다.
비단 예로 든 이광수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쓰고 읽는 나와 당신에게도 '원본과 이미지'가 있다. 사회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는 나와 원본으로서의 나. '두명의나'를 쉽게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현대인의 문제는 소비되는 ‘이미지로서의 나’만 스스로 생각한 탓에 ‘원본’을 챙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안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기대'에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도 나이고, 저것도 나'라는 사실이다.
글을 마친다. 끝까지 읽어준 당신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훌륭하게 자기 몫을 잘 감당하길 바란다. 한 가지 부탁이 더 있다. ‘두 명의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기억해라, '그것도, 이것도 나'라는 사실을.
괜찮다. 굳이 ‘죄송하다’ 말하지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