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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Sep 03. 2020

문학은 건축이다

오늘도 묵묵히 쌓아 올리는 당신께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귀여운 것을 보면 사람의 기억이 감퇴한다고 하던데, 조카가 귀여운 탓인가 보다. 지금은 호주에 사는 사촌 형이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내 조카를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형은 서울 근교에 살았고, 나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영상 통화로 조카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붕어빵’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사촌 형과 형수를 닮은 얼굴이 참 신기했다.    


 조카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옹알이를 넘어 “빠빠”와 “맘마”를 처음 말하는 영상을 부모님과 함께 보았을 때, 그 장면은 개인적으로 가장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비록 분명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이런 모습을 통해 두 사람은 당신들이 부모라는 것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렇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배운다. 아기는 ‘엄마’나 ‘아빠’ 같은 단어를 통해 지금 나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을 주며,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해주는 이분들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맘마, 쉬, 장난감‘과 같은 단어들을 통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 무엇인지 알아간다.



 언어는 표현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배운다.’


 한 사람의 세상이 언어를 배움을 통해 확장된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그의 첫인상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그의 언어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 사람의 언어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은 물론 문화와 가치관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누구나 언어를 통해 세계를 배울 수 있다.

2.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이는 외면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세상에 대하여 알려주고, 성숙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언어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 활동에 대해 처음 썼던 글에서 언급한 것, ‘섭취하는 일’은 오늘의 글에서는 ‘벽돌을 쌓아 올리는 일’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시 대답해보고 싶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동시에, 타인 역시 파악할 수 있다면,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일은 곧 앞서 이야기한 대로 ‘벽돌을 쌓아 올리는 일’이며, 나아가 문학 활동은 ‘건축’이겠지.



 지금 당신의 벽돌은 어디에 놓였는가? 얼마큼 쌓였는가? 현재의 모습이 어떻든 간에 낙심도, 자만도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문학 활동은 ‘건축’이니까. 그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어쩌면 경우에 따라 평생에 걸쳐 완성되니까


 ‘내 건축은 언제 마치나’ 생각하며 절망하기엔 이르다. 혹시 모른다. 당신의 건축의 끝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 사그라다 파밀리아 같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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