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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Sep 04. 2020

문학은 퍼즐게임이다.

조각에서 그림까지

 어떤 만화를 본적이 있다. 평범한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뒷산에 올랐다가 비행물체 비슷한 것을 발견한다. 타임머신이었다. 다행히 그것을 타고 온 시간 여행자는 주인공에게 호의적이었다.


 고장 때문에 불시착한 타임머신을 고치는 중이라고 했다. 호의를 가지고 한 일이었겠지만, 주인공이 이리저리 살펴보다 누른 버튼 하나 때문에 둘은 조선 시대로 떨어지게 된다. 얄궂게도 타임머신은 다시 동작을 멈춘다.


 작가의 설정이었는지, 말은 잘 통했다. 다만, 스마트폰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옷 때문에 저잣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둘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배고파 들른 주막에서 발생했다.


 식사를 다 하고 났는데, 돈을 지급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전취식을 했다는 말이 아니다. 주인공이 내밀었던 오천 원짜리 두 장이 조선 시대에서는 그저 종이에 불과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을터.



 한낱 종이와 작은 쇠붙이에 지나지 않는 지폐와 동전이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우리의 세계에 완전히 동 떨어져 있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모습을 관찰한다면, ‘종이와 쇠붙이’에 그토록 집착하는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당신은 왜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는가? 물론, 노동에는 여러 가치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 중 가장 실제적이고, 큰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는 ‘급여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생계유지 때문이다.



 우리는 지폐와 동전을 단지 ‘종이 쪼가리’나 ‘쇠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사회적 약속이 들어있다.  규칙이 있다. 인간 사회에는 이와 같은 ‘규칙‘이 많다. 그중 하나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바로 언어이다.


 당신과 나는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최소한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고, 사용한다. 언어에도 규칙이 존재한다. 단어부터 이야기해 보자. 예를 들어 ‘레몬’이라는 단어가 있다.


 얼마 전까지 ‘레몬 챌린지’가 유행했다. 여기서 레몬은 ‘챌린지를 이어갈 사람이 먹어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레몬을 먹고 체한 경험이 있다면, ‘레몬’은 상큼하고 구미가 당기는 과일이 아니라 꺼려지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가령 숫자가 붙는다면 의미는 어떻게 확장될까? 예를 들어 ‘레몬 세 개’라는 문장은 사용되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과일가게에서는 구매의사를 결정하는 문장이 될 수 있고,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는 계산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다.


 단어가 혼자 있을 때 그것은 오직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레몬’은 ‘레몬’일 때 그냥 레몬이다. 그러나, 맥락 안에 놓일 때 ‘레몬’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마찬가지다. 단어와 문장은 맥락 안에서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한 맥락에서 의미 있는 기능을 했던 말을 다른 맥락에서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 때 나의 취미는 시계였다. 꽤 유명한 시계 커뮤니티의 회원이었다. 한번은 커뮤니티에서 시계 수리 문의 글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시계를 고쳐서 사용하고 싶은데, 혹시 어디에서 고치는 것이 좋을까요? 괜찮은 수리점 추천 부탁드립니다. **시 *동 근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후에 답변이 이루어질 만한 댓글이 올라왔겠지만, 게시글을 열어본 내가 봤던 댓글은 ‘와, 예쁘네요!’였다.

 물론, ‘예쁘네요!’라는 댓글을 보고 글 작성자는 마음이 뿌듯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이 편안하거나, 시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계’ 수리라는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시계‘ 디자인에 대한 댓글이 달렸기 때문이다.


  문학은 ‘퍼즐게임’이다. 이 조각도 전체 중 일부고, 저 조각도 전체 중 일부다. 조각들은 ‘맞는 자리’가 있다. 문학에 사용되는 단어와 문장 역시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분명 당신의 단어와 문장에는 알맞은 자리가 있다.


 

 우리의 조급함은 조각이 들어맞는 순간을 모른다는 점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지금 당신이 가진 그 조각, 당신의 단어와 문장은 분명 딱 들어맞는 자리가 있다. 그것이 단어와 문장의 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을 하는 사람은 퍼즐 켠왕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조각들을 잘 모아두시라. 차근차근 오늘도 내일도 조각을 모으고, 그것들을 맞추어보는 일에 집중하셨으면 좋겠다. 하나둘 맞아 들어가는 쾌감을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어느 새 조각모음이 하나의 그림으로 보일 때 그 기쁨은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그래, 맞다. 우리는 지금 퍼즐을 맞추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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