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 인간 Jan 17. 2021

옆집 사람이 외계인으로 변했어요!

관심이 없으면 모국어도 외국어가 된다.



‘아아~ 김길규 개새끼’

 2013년 11월, 네이버 지식인에 비공개로 질문이 올라왔다. '잘은 모르겠는데, 계속 가사가 “아아~ 김길규 개새끼” 하면서 제 이름을 부르거든요? 혹시 작곡가가 당산서초 다니는 지도 알아봐 주셨음 좋겠어요.'

 '라이온 킹 보면 처음에 해 뜨면서 나오는 노래 있잖아요. 아~~~ 그랬냐~~~ 발발이 치와와 스치고 왜냐하면~ 왜냐하면~이거 제목이 뭔가요?'

 외국어 가사로 된 노래인데 한국말처럼 들리는 경우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경상도에 사는 4명의 청년들이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드는 그들의 소리에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한 아가씨가 핀잔을 준다.

 "저기요, 아저씨들이 여기 전세 냈어요? 좀 조용히 하세요!" 그 말을 들은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더니 "하모, 하모! 그라모 니는 이기 마카 다 니끼다 이 마리가?"(그래, 그래! 그러면 너는 이게 모두 다 네 것이다. 이 말이니?)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던 다른 아가씨가 이렇게 말한다. “거 봐, 일본 사람이라니까?”

 미국의 작가 실비아 라이트는 스코틀랜드 민요 ‘Earl of Moray(머레이 백작)’의 ‘laid him on the green(그를 풀 밭에 눕혔다네)’이라는 부분을 ‘And Lady Monde green(그리고 몬더그린 아가씨)’로 들은 적이 있다고.

 이처럼 특정 발음이 내가 아는 다른 발음처럼 들리는 현상을 ‘몬더그린’이라고 한다. 이와는 또 별개로 아예 말이 아닌데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아? 어떻게 알아요?"

 ‘너도 부모가 되면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아기는 말을 못 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울 뿐이다.

 배가 고프면 운다.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도 운다. 자기 맘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운다. 아무튼 운다.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운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우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안다. 부모와 자식만 그런 게 아니더라.

 "오구오구 그래쪄요?"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야옹하고, 멍멍하고, 끙끙대는 모습만 봐도 안다. 뭐가 필요한지, 왜 그러는지 다 안다.

 "너는 저게 다 한국말로 들려?"

 꼭 한 번쯤 묻더라. 영화관에 가서 외국 영화를 보거나, 쇼핑몰에서 외국 음악이 나오면 지인들이 하는 말이다. 그러면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아니, 그러면 병원 가 봐야지."

 외국어 듣기를 잘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갑자기 외국어가 모국어로 들리는 경우는 없다. 귀에 들리는 웅얼거림이 어느새 ‘말소리’로 들리는 순간을 경험한다.

 영어는 여전히 영어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이 또렷하게 들리는 것뿐이다.

 어쩌면 부모님도, 고양이나 개를 키우는 분도 이런 게 아닐까? 야옹은 여전히 야옹이고, 응애는 여전히 응애다.

 관심이다. 그걸 ‘말소리’로 바꿔주는 건 관심이다. 관심의 관은 본래 문의 빗장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관심을 쏟는다는 건 뭘까? 어렸을 적 불렀던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굳게 닫힌 저 문을 보고 어느 누가 좋아하리오? 아무래도 닫힌 문보다 열린 문이 더 좋아. 삐그덕 삐그덕 빗장을 열어요.'

 관심을 준다는 것은, 관심을 쏟는 일은 마음의 문을 여는 거다. 빗장을 푸는 거다. 마음을 열어야 그 사람이 제대로 보인다. 빗장을 풀어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야, 요즘 군대가 군대냐?"

 "나 때는 왼손으로 애 보고 오른손으로 업무 봤어!"

 "아휴, 뭘 걱정이야? 우리 때는 수저만 갖고 결혼했어!"

  'Latte is A horse.' 빗장을 풀지 않으면 여전히 ‘나 때’에 갇히는 거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계속 'Latte is A horse.' 한다.

 적어도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마음을 열고 이해해보려는 시도가 없으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저 사람은 외계인일 수 밖에 없다.

"옆집 사람이 외계인으로 변했어요!"

 저 사람과 나는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관심이 없으면 당신과 나는 외국인이 된다. 옆집 사람이 하루아침에 외계인으로 변한다. 관심이 없으면 모국어도 외국어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택배야, 고마워 거기 있어줘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