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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Jan 18. 2021

에세이를 쓰니 찌릿하다.

글쓰기는 삶을 농밀하게 한다.



‘좀이 쑤신다’

 옷 사이로 좀이 돌아다니는 듯 가만히 있을 수 없다. 4년 동안 일하던 주말인데, 갑자기 쉬니 이것도 나름대로 곤욕이라면 곤욕이다.

 가만히 있으면 뭐 하겠나? 글을 썼다. 점심으로 만두를 먹고는 만두처럼 글을 빚었다. 아직도 벌레가 꿈틀댄다. ‘나가야겠다’ 생각한다.

 검은색 운동복 바지와 빨간색과 파란색이 태극무늬 마냥 섞인 점퍼를 입는다. ‘더 두꺼운 걸 입을 걸 그랬나’ 생각하는데, 저 앞 산 쪽에서 큰 소리가 난다.

 한국 남자라면 대부분 군 복무를 한다. 눈이 엄청나게 나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격 훈련을 처음 하러 간 날 들었던 소총 소리를 아직 기억한다.

 크고 둔탁한 소리가 반복해서 났다. '사냥하나?'(필자가 알기로, 농사를 방해하는 짐승에 한 해 허가받은 사람들은 사냥이 가능하다.)

 산 중턱에서 무슨 작업을 하는 소리였다. 크게 궁금하지 않아 자세히 보진 않았다.주황색 포클레인이 ‘삐삐’ 소리를 내며 연신 고개를 왔다 갔다 하고, 하얀색 큰 트럭이 뭘 싣고 있었다.

 저번에 걸었던 길로 가기로 했으니 놋그릇 같은 소리가 난 @@농원을 지났다. 소리 없이 하얀 연기만 올라간다. 개가 짖는다. 놋그릇 소리 대신 개가 반가운 티를 낸다.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본다. 연하늘색이다. 하얀 구름이 뜯어놓아 먹기 좋은 솜사탕처럼 흩어져 있다.


 따뜻하면서 시원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물고기들이 좋아하는 조경 수역이 이런 느낌일까?

 기계음으로 가득했던 @@정밀도 파란 철문 너머 고요했던 베이지 색 공장이 그랬던 것처럼 고요하다. 파란색 드럼통들이 나를 마중 나온 듯 일렬횡대로 정렬한 채로 마중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도 손님이라고 봐주는지 까치가 운다. 저 멀리 있던 쫀쫀한 마시멜로 비슷한 무언가는 저번에 왔을 때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다. 발이 달린 건 아닐 거다.

 조금 더 지나자 소가 ‘나 여기에 있소’하며 게으른 울음을 내던 곳이 나온다. 띄엄띄엄 보였던 파란 지붕은 눈이 녹아 선명하다.

  굴다리를 걷는 소리는 축축하지 않다. 며칠 사이 눈이 다 녹고 길은 뽀송뽀송 말랐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소리도 한결 부드러운 것 같다.

 길가에 눈은 다 녹았는데, 시냇물은 아직 얼어있다. ‘못 봤지만, 지난번에도 이렇게 얼어 있었겠구나’ 생각한다. 조금 더 가면 노란 페인트가 벗겨진 주유소가 나오는데, 바람이 차갑다.

 ‘이왕 온 거 저기까지만 가야지’ 생각하고 올라간다. 처음 보는 광경이 있었다. 유조차가 탱크에서 기름을 받고 있는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참을 빤히 보다가 바람이 더 차가운 것이 ‘얼른 집에나 가라’ 하는 것 같아서 돌아 걸어 내려온다.

 어라? 아까 얼어있던 시냇물이 반대편에선 흐르고 있다. 눈이 내릴 것 같지는 않은데 바람은 계속 분다.


 돌아오는 길엔 @@정밀 대문의 녹슨 부분이 도드라져 보였다. 또 빤히 거길 보고 있는데 소리가 난다.


 '꽥!'

 아, 저긴 돼지를 키웠었지. 돼지 농장이 있는 산 중턱을 잠깐 본다. 어디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걷다 보니 농원도 지나치고 아까 큰 소리가 났던 곳까지 돌아왔다. 여전히 소리가 난다. 트럭에 나무를 싣는 것 같다.

 지난번엔 여기서 눈을 잔뜩 맞았었는데, 이 날은 초봄 같은 푸른 날씨였다. 똑같은 길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렸을 적 수업 시간에 떠들면 늘 걸리는 건 나였다. 목소리가 컸으니까. 선생님은 바라는 것보다 단호했다. "밖에 나가서 무릎 꿇고 손 들어."

 복도에 무릎이 닿으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차가운 느낌이 밀고 들어왔다. 우습지만 ‘앗, 차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내가 ‘살아 있구나’ 생각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면 팔이 떨어질 것처럼 아팠다. 다리는 무감각해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들어와. 수업 잘 들어야 한다."

 들어가기는커녕,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었다. 무릎을 꿇고 한참 있다가 피가 다시 통하니 찌릿찌릿한 느낌이 다리를 감싼 거다.

 에세이를 쓰고 일상이 찌릿찌릿하다. 하루가 더 농밀해졌다. 모든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달라졌다. 지나쳤던 것들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오래 무릎 꿇었던 다리로 일어섰을 때의 저릿함이 싫지 않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삶 자체를 싱그럽게 한다. 에세이를 쓸 이유는 이걸로 충분하다.


 에세이를 쓰니 찌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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