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해 쓰고 싶은 한 유학생의 감정기록
싸이월드, 네이버, 이글루스, 티스토리, 포스타입 블로그 등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급기야 브런치에도 손을 뻗는다. 거진 모든 블로그 플랫폼마다 내가 쓴 글들이 산재해 있는 셈이다. 하나에 정착하여 전문성을 키워갔다면 지금쯤 뭐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하지만, 애당초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블로그를 하는 목적도 아니었을뿐더러 그저 손수 일기장을 쓰는 것이 손목이 아플 쯤에, 혹은 영화라던지 어떤 것을 리뷰하기엔 아무래도 사진과 동영상과 같은 시청각자료가 있으면 글 쓰는 동안에도 쓰려는 말이 증발되지 않아 더 유용하고 글이 공개된다면 가끔 방문자가 의견을 달아준다면 나 스스로도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으니 내 입맛에 따라 글을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노마드로서 블로거의 시간들을 보내왔다고 할 수 있겠다.
브런치를 시작하는 것에도 단 하나의 개인적인 소망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대단한 목표가 있지 않다. 실은 외국에 나와 있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개인적인 소망이란 거창하게는 유학기, 현실적으로는 아마도 별 볼 일 없는 한 외국체류자의 잡다한 생각이나 푸념 같은 것을 차곡차곡 쌓아두어 한 곳에 모아두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더군다나 공부하는 분야가 인문사회계열이라 학문으로서의 글은 자주 읽고 쓰기는 하나 가지고 있는 정보를 논리적으로 잘 전달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라 이러한 목적지향적인 글 말고 내 마음과 감정을 잘 돌아보고 표현하는 글을 휴식 삼아 쓰고 싶다는 생각도 곁들여 있다. 특히 타지 생활에 한국에서 오랜 시간 동안 형성해 온 인연들만큼 서로에게 시간을 내줄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만나기에도 쉽지 않고 만난다 한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유학생활 때문에 알고 지낸 지 1-2년여 밖에 되지 않은 터라 진솔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잘 없는 현실에서, 기껏 쌓아 올린 사회성과 공감능력의 레벨이 다시금 하강하는 듯한 위기감을 극복하는 데에도 이러한 작업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다. 나의 마음과 감정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나의 직, 간접적인 주변 환경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반응이 대부분일 테니 내 마음에 대해 쓰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확인이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사회성이나 공감능력의 형성에서도 결국 요구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가시나무 같이 뻗어 있는 지극히 사적이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이 될 수도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안 할 수가 없는 잡생각을 외국에 살고 있다는 특수한 상황으로 이름을 붙여 늘여놓겠다는 소리이다. 이미 한국을 떠난 지 3년째이기에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 당시 적어둔 일기장이나 조각글들도 있고, 더군다나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건 비단 외국을 떠나온 후부터가 아닐 테니 한국에 있을 적 내 머리에 스쳐갔던 생각들을 먼지를 털어내 다시금 꺼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 모든 글들을 더하면 상당히 긴 여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Yellow room이란 이루마의 동명의 곡에서 가져왔다. 어린 시절 그는 노란색으로 꾸며진 방에서 살았는데 그날의 기억을 담아 그가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만든 곡이라 한다. 이러한 비하인드로 단어를 가져와야겠다고 당장 생각한 것은 아니고, 아주 예전부터 다른 플랫폼에서 블로그를 할 때 내 생각과 잡념을 쓰는 게시물의 카테고리에는 늘 이 yellow room을 썼었다. 그때의 나는 유학길에 오를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고, 노란색 방이라는 단어가 단지 사색으로만 가득 찬 나의 방은 어떠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가의 발상을 일으켰던지라 줄곧 써왔던 것이 습관이 되었다. 가끔 그런 단어들이 있지 않은가, 너무 오랫동안 써와서 이제는 나의 삶에서 배제하기가 힘든 것들. Yellow room이란 내게 그러한 단어 중 하나라서 브런치라는 새로운 터전에서의 시작에 구태여 낯선 단어로 나를 포장하기보다는 익숙한 단어를 동반하는 것이 적응하는 데도 안정감을 주리라.
소개글이 필요치 않게 길었다. 우당탕탕 요란하고 화려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사건사고 없는 심심한 일상이 유학생에게는 가장 축복이라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도 심심한 글들을 써내려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어떤 때에는 처절한 외국 체류기일 수도, 어떤 때에는 Too much information일 때도, 또 어떤 때에는 인간이라는 종족으로서 으레 하는 관심사에 대한 뻔한 연설일 것이다. 아무튼 이 모든 건 나의 감정, 절대 논리적이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생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에 대해 쓰고 싶은, 한 사람의 유학생활 동안의 감정 기록 시작.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898일.
브런치북 첫 연재일로부터 +0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
* 기존 매거진에서 작성한 글(2024.3.21.)을 재업로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