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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Aug 29. 2024

슬픈 외국어

외국살이의 숙명인 어학 공부여!

4월에 이어 5월에도 여전히 어학 공부에 하루를 그야말로 전념하고 있다. 일과의 시작과 끝이 어학인데, 공부의 끝은 없다는 말이 체감되는 것이 슬프지만서도 이 불변과도 같은 말에 반기를 들 수는 없을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씨름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준비를 하니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준비하는 telc C1 Hochschule는 시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으로, 내용도 전공의 세부지식까지는 아니지만 분야별로 일반 상식 선에서는 미리 알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 꽤 있다(특히 쓰기와 말하기 부분에서 그렇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알아서 공부를 해야 하니, 루틴을 일단 잡아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 단어의 경우 지난 DSH를 준비하며 한 차례 보았던 단어책에 테마별로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5월 중순에 친 Telc 시험 전까지는 한번 더 복기를 했다. 문제풀이의 경우 Mit Erfolg로 시작하는 연습문제와 실전 문제집을 사서 풀었는데 이 책의 난이도는 꽤나 어려웠다. 그에 반해 도서관에서 빌린 모의문제집은 비교적 쉬웠다. 그 외에는 매일 아침 zdf*(독일의 TV 방송사)의 전날 저녁 7시 방송을 틀어놓은 채 오전 채비를 하였고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켜면 미리 바로 뜨도록 설정해 둔 DW**(Deutsche Welle라는 국제 방송사 및 신문사) 홈페이지에서 기사 헤드라인을 보고 흥미가 가는 텍스트들을 읽었다. 산책을 할 때는 Was jetzt?라는 매일 업데이트되는 팟캐스트를 들으려 노력했고, 그 외에 wissen.de라는 사이트에서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는 기사들도 꽤 도움을 받으며 접했다. Die Zeit를 구독하던 시기 받았던 신문을 여태 읽지 않은 채 가지고 있어서 다 읽어버릴 요량으로 추가적으로 한 장씩 읽었다. 한국에서도 잠깐 학부 막학기 시절 경제신문을 구독한 시절을 제외하곤 이렇게 시사에 밝았던 적은 없었는데.. 그 외의 재미 요소는 거의 차단하다 보니 기사에서 발견하는 지식이나 문구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날들이기도 했다. 그중에 하나, Wenn man die Schönheit von Dingen sieht, erhöht das ihren Wert. 어떤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그것의 가치는 높아질 거예요. 신문 한 페이지만 달랑 들고 햇볕 아래 기숙사 잔디를 거닐면 무척 흥미진진한 소설책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동일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가끔은 권태가 찾아오는 적도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사람의 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오는 무력함과 고뇌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열반의 상태에 올라야 한다고 했더랬다. 평범한 인간일 뿐인 나로서는 당연히 열반의 경지는 너무 멀었기에, 이렇게 권태가 찾아오면 열반보다는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을 틀었다. 하, 이렇게 전공 공부가 그리웠던 적이 있었던지!


그리고 5월 중순 경 첫 번째 시험을 쳤다. 물론 준비반도 없이 혼자서 친 것이라 연습 삼아 치자는 마음이 한편 있었는데 텍스트를 다루는 시험은 그럭저럭 쳤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정기적인 언어교환이라던지 하다못해 원어민과 제대로 대화한 경우도 많지 않았기에 말하기는 진행하면서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뭐, 연습이니까. 마침 시험 전 vhs에서 6월 초중반 경 다시 시험이 열리는데 그전에 네 번가량 짧게 대비반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 번째 시험 일정을 정했다. 5월 말부터 시작한 시험 대비반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4번뿐이었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마저도 어디랴.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의 황금빛 노을은 근사했고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굶주린 배를 달래러 시내로 향하는 길은 무척이나 청량했는데 구체적인 마음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왜인지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에 담는다.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253일.

브런치북 연재 시작일로부 +3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지는 모름.


*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동일한 제목의 에세이에서 가져옴(현재 <이윽고 슬픈 외국어>로 번역되어 있음).

* 기존 매거진에서 작성한 글을 재업로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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