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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Sep 05. 2024

여름 막바지, 이지 컴 이지 고

떠나보내는 사람에게도 준비는 필요하고

아이패드를 챙기고는 오랜만에 카페를 왔다. 한국에 있을 때 특히 내가 지내던 집이 시내 근처라 매일 다른 카페를 방문해 매번 새로운 맛의 커피와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낙이었는데, 지금 지내는 독일의 도시에는 특히 이렇게 한 시간 가량 잠깐 책을 읽고 혼자서 볼일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한정적이라 어떻게 보면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제한된 수의 카페 중 한 곳을 골라 가기만 하면 된다. 밤과 아침은 창문을 열어두면 바닥이 차가워질 정도로 서늘한데 낮은 여전히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는 큰 일교차 속에 얼음이 들어간 아이스 커피를 팔고 더군다나 에어컨까지 나오는 공간은 더욱 없어서, 한국에서 피서를 카페로 간다는 말은 여기서 통용되지 않는다. 버스나 대중교통에도 당연히 에어컨은 잘 키지 않는데 창문이라도 활짝 열 수 있다면 바람이 들어와 괜찮을텐데, 한국처럼 옆으로 당기듯 여는 창문의 구조가 아니라 큰 창은 아예 열리지 않고 윗부분의 작게 나 있는 창문은 그마저도 살짝만 열릴 뿐이라 대중교통은 아예 찜통 같아서 카페로 가는 길도 결코 순탄하지 않다.


하지만 말했듯이 밤과 아침에 방 안의 창문을 활짝 열어두면 서늘한 공기가 양껏 들어와 여름이 점점 물러나고 가을이 곧 시작되리라는 자연의 움직임을 체감한다. 9월의 나는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까. 아무튼 주변은 많이 바뀔 것 같다. 어젯밤에도 늦게 방으로 와 새로운 메신저 어플을 설치하고는 그 기능이 신기하다며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가 함께 누워 이런저런 실없는 이야기도 나누었다가 들뜨게도 하였다가 새벽 두시가 되어 한껏 충혈된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꿈뻑거리며 여기서 자고 싶다며 귀엽게 칭얼거리는 - 이 날 미용실을 다녀와 짧아진 스포츠컷의 - C가 무엇보다 출국하기 전 기숙사의 짐을 정리하고 본가로 간다면 나의 일상은 지금과 아주 다르게 바뀔 것이다. 


어제 조금 이른 저녁을 포테이토칩과 레드 와인으로 떼우며 갑작스레 몰려드는 허무함에 이 아이를 만나기 전 독일에서의 나의 일상이 어땠는지를 가늠했다. 그때도 시간은 공평히 24시간이었을 것이고 물리법칙에 따라 똑같이 흘렀을 텐데, 무한히 펼쳐진 것 같은 이 시간을, 특히 밤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끝없이 울적해질 것 같아, 9월부터 매달마다 떠나는 일정이 이미 잡혀진 여행지들과 그 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의 공상으로 대체하며 외면하고 있다. C는 냉정하게 들린다며 투덜댔지만 동시에 easy come, easy go라는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말은 인연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크게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에 가깝다. 떠나는 것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쉽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진심이 이어져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다시 서로를 당겨 헤어진 것처럼 다시 쉽게 만나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은 덜 슬퍼할 수 있는 몇 주 뒤의 내가 될 수 있기를.


어젠 Oasis가 갑자기 재결합 선언을 하고 우선 영국과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한정으로 세계 투어 일정을 알려 세계가 들썩했다. “월드“ 투어라 했으니 그래도 가까운 유럽까지는 오지 않을까 희망하며 8월 31일 시작될 티켓팅을 신경쓰고 있지는 않지만, 그 사이 늘 가보고 싶었던 더블린에 대한 열망과 우연히 유튜브에서 스코틀랜드 기행기를 보고 있어 공연 관람을 빙자로 내년 여름의 여행지를 발칙하게도 생각하고 있다. 공부 생각보다 놀 생각을 더 하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은 떠남을 앞두고 어수선해졌다지만 너무 극심히 마음이 붕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할테다. 하지만 오아시스라니! 부디 이 형제가 자신들 홈랜드만의 공연만 마치는 일회성 선언만을 한 것은 아니기를, 또 다시 갈등이 있더라도 전 세계의 팬들을 생각해 투어 기간만큼은 참아주기를.. 남의 형제의 우애를 이렇게 살뜰히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아무튼 31일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더 있으니 조금은 더 고민해봐야겠다. 공연은 갈 거다. 독일에 투어가 온다면 그때 갈지, 아니면 지금 공개된 일정상 영국으로 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해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뒤늦게 Oasis 음악을 듣고 왜 일찍이 노래를 찾아 듣지 않았나 어찌나 후회 했던지. Stop crying your heart out을 라이브로 들으면 아마 울 것 같다. (그리고 며칠 뒤 더블린 티켓팅에서 참패하였다고 한다) 


Edward Gordon, Corner Room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1077일

브런치북 연재 시작일로부터 +10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지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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