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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Sep 18. 2024

이탈리아 여행기 - 1

2022.9.6. 유럽 내에서 움직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학 친구들 중 두 친구 중 한 명은 영국, 한 명은 카메룬에서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카메룬에서 일하는 친구와 독일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는 내가 엇비슷하게 입국을 하면서 세 명이서 한번 여행을 위해 모이자는 약속을 했더랬다. 가장 비행기값이 싼 곳이 밀라노였고, 내 어학성적이 나오고나서 곧바로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본래는 8월 말 즈음이었다가, 휴가를 맞추면서 9월 중순으로 날짜가 정해졌고 더운 여름이 한창일 이탈리아의 날씨를 감안하면 여행하기엔 적당하다 싶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출발하는 까닭에, 비행 시간도 가지각양이었는데 일단 나는 친구들보다 하루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 티켓이 말도 안 되게 싸서 하루 전부터 일정을 시작했다. 여행 준비를 하며, zoom으로 세 번 정도 모였는데 (물론 셋이서 다같이 본 건 고작 한번..) 어쩌다 무계획형들이 모이게 되어 일정도 도시 간 이동 동선과 하루 중 큼지막한 일정만을 잡고 식당이나 카페 이런 것은 발길 닿는 대로 가자는, 계획형이 보면 기가 찰(ㅋㅋ) 일정도 세우기도 했더랬다.


마인츠 행 기차


친구들보다 하루 일찍 일정을 시작한 첫째 날, 출발지인 독일의 내가 사는 곳에서 경유지로 독일의 마인츠Mainz, 도착지는 이탈리아의 몬짜Monza라는 곳이다. 밀라노Mailand로 가는 비행기는 4시가 넘어서야 뜨는데, 예매한 라이언에어의 비행장이 Frankfurt Hahn 공항에 있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또 거진 2시간 정도를 가야 했고 그마저도 셔틀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 이른 아침부터 열차를 타고 우선 셔틀 버스 정거장으로 가야했다. 기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바보같이 2장의 자리를 예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용객이 많았던 건지 역무원과는 마주치지도 못해서 환불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짐가방을 옆자리에 앉혀 괜히 가방만 호사를 누린 기차 여정이었다(...). 떠나면서부터 역경이 예상된다. 역내에서 산 커피와 빵으로 이른 아침 여정의 노곤함을 깨우며 바로 전날 결제했던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를 읽기 시작했다. 짐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아이패드 대신, 독일에 오기 전 J가 선물로 주었던 이북리더기를 처음 개시하여 들고 왔는데 비행기고 기차고 뭐고 다 딜레이가 되었던 상황 속 결과적으로 동무가 되어주었던 이 녀석을 가져오길 잘했다.


셔틀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마인츠

Hahn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 정류장은 총 세 군데이다. Mainz가 가장 가깝고, 그 전이 Frankfurt 국제공항, 그리고 Frankfurt 시내인데 이참에 마인츠를 좀 둘러보자는 생각에 일부러 Mainz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의 표를 예약했다. 항공사 규정상 캐리어는 기내 반입을 위해 추가 차지를 해야 한대서 스포츠백을 들고 갔는데 내내 이고 다니느라 고생이었던 기억이다. 시간이 애매해서 마인츠를 구석 구석 볼 여를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주변 이들이 얘기하듯 크게 볼만한 것은 없었다. 독일에 머무르다보니 유럽은 이제 건물양식이든 거리이든 뭐든 엇비슷하게 보여 큰 감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불운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베르가모 중앙역 Stazione di Bergamo


셔틀버스도 딜레이되고, 겨우 도착한 Hahn 공항에서 기껏 짐 검색까지 마치고 비행 시간에 맞춰 책을 읽으며 점심도 급히 먹고는 수속을 하려 줄을 서 있는데 딜레이가 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라이언에어가 연착이나 딜레이가 자주 된다곤 들었는데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 다 합쳐 3시간 가량 되었던 지루한 보딩 시간 동안, 대학 시절 갔던 유렵 여행에서 로마Rom와 베네치아Venedig를 들렀던 사진들을 뒤적거렸다. 그때의 나는 대략 10년의 시간이 지난 후 독일에서 이렇게 다시 이탈리아로 향할지 알았을까. 겨우 비행기를 타고 비교적 짧은 비행 시간을 건너 베르가모Bergamo 공항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만 그럴 줄 알았는데 아고다에서도 숙소를 예약할 때 셀프 체크인이 아니라면 도착 시간을 호스트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서 공항에 내려 우왕좌왕하느라 베르가모 시내로 가는 버스에다 다시 Monza로 향하는 지역 열차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밀려버려 지긋한 밤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한다. 이상하게도 이 날따라 식당도 일찍 문을 닫은지라 역내의 매점에 먹을 것을 겨우 챙기고는 맥주는 한 병을 바로 따다가는 기차가 올 때가지 거리에 앉아 마시며 책을 마저 읽었다. 무료하게 얼어버린 시간 속 책이 없었더라면 여행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숙소는 몬짜 기차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건물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숙소를 찾을 때면 한껏 긴장을 해야 한다. 아고다에서 미처 결제하지 않은 잔금을 호스트에게 현금으로 지불하고 (마찬가지로 유로를 써서 참 편했다) 단촐한 방에 짐을 내려놓으니 어깨가 이제야 숨을 쉬는 것 같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1박을 하건 오래 머물건 간에 늘상 하는 루틴으로 가방 속 짐을 모조리 꺼내놓아 꼭 내 방인 마냥 정리를 하는 습관이 있다. 이 날도 24시간도 머무르지 않을 방이었지만 씻기 전 욕실에도 샘플들을 두고 옷들을 행거에 걸었다. 씻고 나오니 더 개운하다. 오늘치의 일기를 가져온 일기장에다 짧게 쓰며 포장해온 잠봉뵈르와 맥주를 들이키며 Monza에서의 첫 날이자 마지막 밤을 조용한 소란스러움으로 반긴다. 소화를 시킬 겸 침대에 기대어 열악한 조명 아래에 다시금 이북을 꺼내들었다. 너무나 불행해 하루를 사는 것을 '선택'하는 자신을 가리켜 낙관적이라 자조하는 주드의 모습이 어쩐지 생생하게 그려져 덩달아 마음이 침전한다. 이 책이 여행에는 어울릴지 모르겠다. 떠올려 보면 본래 이 책을 결제하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본래 이북리더기를 들고 올 다짐은 있었고 그렇다면 이탈리아 여행에 걸맞게 이탈리아 작가인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중 몇 년 간 읽으리라 미뤄만 두었던 <푸코의 진자>를 보려 했는데, 언젠가 크게 우울함을 느낀 적이 있어 울적한 여행이 되어도 나쁠 것 없겠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소장을 한 것이었다. 무엇이든 들뜨면 좋지 않은 법일테니 이렇게 가라앉는 여행도 해보면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이 스친다. 그렇게 첫날 밤이 고요히 흐른다.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354일.

브런치북 연재 시작으로부터 +23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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