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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Sep 20. 2024

My Little Forest

나의 작은 방, 나의 작은 숲.

아침에 몸을 일으키자마자 글을 쓰기로 다짐한 것이 벌써 2주가 되어간다. 체감으로는 일주일 정도는 흘렀을까 했는데, 시간은 정말 무자비하게 지나가는구나.


따뜻한 물을 끓여 티백 포장지를 뜯고 이 시간 동안 들으면 좋을 음악을 골라 켜두는 것으로 글쓰기의 준비는 대강 끝이 난다. 밤새 방 안에 멈춰 있었을 묵혀 있는 공기를 바깥으로 내보내고 새로운 공기를 들여 순환시키기 위해 열어둔 창문 틈새로 지저귀는 새소리, 부는 바람에 저들끼리 부딪히는 잎사귀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절로 고요해진다.


다른 곳을 갈망하기 앞서, 이곳이 바로 나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이다. 나 혼자 쓰고 꾸리는 블로그를 몇 년 전에 만들어 두었는데 그 사이트의 이름도 '문턱의 작은 숲'이다. 어느 날 책을 읽으며 발견한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는데, 이 블로그의 이름도 다음의 문장에서 착안한 것이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 -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이 작은 숲에는 모든 것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장래에 사랑할 만한 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아마 바깥을 결국은 나가야 얻을 수 있을 테지만, 나의 성정은 또 다른 어느 책에 나온 분류법을 빌려 전진하는 자라기보다는 근원으로의 후퇴를 하는 자이기에 오히려 녹이 슨 옛것과 이미 스쳐갔던 것을 가만히 음미하다 보면 그만으로도 하나의 여행이 된다.


이렇게 공간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그 누구를 신경 쓸 틈이 있으랴. 가끔 생각이 나면 안부를 묻고 앞으로도 각자의 작은 숲에서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직접 말로든 혹은 마음을 담은 기도로든 응원하는 것. 둘 이상의 사람이 만나 교류하는 데의 궁극적인 본질은 결국 이러한 안부일 것이다. 잘 지내? 나도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너도 잘 지내기를 바라, 와 같은.


지나온 기억을 하나 발굴해 낸다. 시작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희미하나 중학생이던 때 일본 작가들의 가벼운 소설을 탐독하던 때가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등의 작가들이었다. 마침 이들의 단조로우면서도 다정한 저작들이 유행이기도 했으므로 어쩌면 서점을 들렀다 한 칸을 가득 메운 이들의 책들 중 한 권을 집은 우연으로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학교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앞둔 때였다면 누리지 못할 호사를, 평소에는 집안의 가족들을 비롯해 바깥의 모든 세상이 잠든 것 같이 조용하던 늦은 밤 책상의 스탠드를 켜고 아이스티 같은 것을 옆에 둔 채 MP3나 CD 플레이어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이어폰을 통해 들으며 한 장 한 장, 책의 세상으로 흡수되던 시간들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학교로 나서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날은 집어든 책이 재미있어 쉽사리 멈추기가 힘들기도 했고, 책이 예상했던 줄거리로 흘러가지 않아 지루해하면서도 옆에 둔 잔에 얼음이 부딪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그날 유난히 낭만적으로 들린다거나 단순히 그 시간 자체가 좋아서 그때만큼은 무엇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나 혼자만의 행성에 부유하는 듯한 감각이 들면서 잠을 포기한 적도 많았다.


늦은 밤 올빼미처럼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던 그 아이는 이제 그 방에서 떨어진 다른 방에 정착해 마찬가지로 책상 앞에 앉아 밤이 아닌 아침의 시간대에 이제는 무언가 읽지 않고 어떤 것들을 써 내려가는 몸만 어른인 존재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그 소녀는 기특하게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나의 곁에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변함없이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물론 나 역시 좋은 것을 잃고 가지고 있어 봤자 득될 것이 없는 것들을 잔뜩 짊게 되어갈지 몰라도, 그때 그 시절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 좋아하는 것들을 하던 나의 모습만큼은 오랫동안 변함없이 지켜갈 수 있도록, 과거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빨간 실은 놓지 않게끔 오늘도, 내일도 이렇게 써내려 가야지. 나의 이 작은 숲에서.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282일.

브런치북 첫 연재일로부터 +26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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