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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Sep 27. 2024

우리는 안녕의 뜻을 하나로만 알았지

헤어짐에 익숙해지기까지

3월 21일에 그간의 어학원에서의 C1 코스가 끝났다. 늘상 마인 다리를 부지런히 건너가던 이 일상이 과연 그리워질까 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어학원을 더 갈 일은 없을 뿐만 아니라 집까지 옮겼으니 그 길은 기어이 추억이 되어버릴 것 같다.



종강을 앞두고 D와 제대로 금요일 밤을 보냈다. 시험 때문에 아무래도 부담스럽다고 일찍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늘상 가는 식당에서 피자에 처음 먹어 본 판나코타에, 맥주에 양주에 결국 흑맥주 펍까지 가서 새벽에야 귀가를 했다. 밤에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도 모르겠고, 다음 날 머리가 너무 아파서 코로나 검사까지 해봤다며 양주가 문제였을까 말하는 D의 문자를 보며 귀가해서 게워냈던(...) 지난 새벽의 내가 떠올랐다. 아이고, 글 쓰면서도 속이 울렁거리네.


월요일, 반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광장에서 D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그는 이틀 뒤에 이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 내가 자란 문화권에서는 아무리 친구라 해도 포옹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번은 헤어질 때 작별의 의미로 포옹을 해도 되겠냐고 매우 정중하게 말했던 이 친구와 인사를 나누며, 이 곳에서 나는 새로운 이들과 인연을 만들기만 해보았지 이렇게 헤어지는 경우는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올해 Oktoberfest가 열리면 꼭 함께 보자고 약조하며, 서로의 운을 빌어주며 몸을 돌리는데 현실감이 없었다. 몰랐으나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다음 주, 이수증을 받으러 학원 다시 들렀다. 돌아서서 마인 강에 살짝 걸쳐 있는 꽃들을 눈에 담다가, 빵을 사서 거리의 벤치에 아무렇게나 앉아 먹었다. 후련한 마음이 들면서도, 처음 학원을 나섰던 날들, 그리고 극히 추웠던 겨울의 아침 오들오들 떨며 길을 나서던 날들이 떠올랐다. 9월 마지막 주부터 갔으니, 12월 연말 즈음 해서 중간에 3주 가량을 쉬었다 하더라도 근 6개월을 다닌 셈이다. 비록 시험은 떨어져서 유종의 미를 거두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 때의 기억들이 앞으로 어떤 형식으로든 나에게 양분으로 남겠지.



번외로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D가 보내준 사진들. 고맙게도 종종 먼저 연락이 와서 학원이 끝난 지금도 메신저로 왕래를 하고 있긴 하다. 그나저나 4월인데도 저렇게 빙하가 가까이나 있다니! 아아, 언젠가 가볼 수 있으려나.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185일.

브런치북 첫 연재로부터 +37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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