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몬트 Sep 09. 2024

이국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아름다움의 근원과 나의 근원을 떠올리다

어제의 경험은 실로 신비롭고 진귀했다.


야간의 뜰에 성의 없이 앉은 탓에 모래투성이와 함께여도 어둠이 찾아올수록 서서히 주황빛이 선연해지던 궁전을 밝히는 등과 먼 옛날부터 끊임없이 연주되고 노래되었을 교향악과 여전히 사람들을 슬프게도 만들었다가 긴 생각에 잠기게도 하였다가 결국은 행복하게 만드는 여름날의 풍부한 공기도. 인터미션 때 와인잔을 실수로 시끄럽게 부딪히는 바람에 머쓱해진 사이 옆자리 앉은 이들의 다독이는 듯한 웃음에 담긴 따스함까지.


그저 음표뿐일 정적인 것이 손에 의해 부딪히고 연주되면 음들이 강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 문득 다채롭고 신기하다. 견인되는 이 생동감은 무엇으로 유래되는 걸까. 연주곡을 만든 이? 사람들 앞에 내보이기 위해 부단히 연습했을 연주자들? 어찌 보면 스쳐갈 수 있는 소리들에 정성껏 귀를 기울여 기어코 의미를 찾는 청중들?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 음이라는 것을 시초로 만든 이? 연주되는 악기들을 발명한 이?


하나의 악장에도, 한 번의 순간에도 이렇게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과 그것을 지탱했을 고통스럽기도 사랑스럽기도 했을 시간들이 무수히 모여 있을 테니 어찌 생동감이 없으랴. 그러니 '아름다움은 삶에 속해 있지만, 예술에 속하게 되면 영원히 존재한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어젯밤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먼 내 나라에 두고 온 이들과 함께, 이곳에서 이 멋진 추억을 함께 나누었더라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한다. 이미 내 곁엔 이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동행해 주었던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진귀한 이들이 있었음에도! 이러니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을 끝없이 탐하고 결국 손에 넣더라도 또 다른 욕망을 채우려 괴로워하는 시계추 같은 삶을 산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낮에 운동을 할 겸 뙤약볕이 내리쬐는 바깥을 걷다가, 문득 나의 근원을 떠올렸다.


특히나 모국이 아닌 곳에 나와 있으면 나의 출생지를 물어보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려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 물론 질문하는 이들의 대부분도 나의 출생지가 곧 나 자신임을 가정하지는 않겠지만 - 답을 하면서도 나의 근원지가 곧 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매개이기는 한 건지 궁금해진다.


기사를 읽다가 내전으로 인해 고국을 떠나온 슬픔과 동시에 이곳저곳을 누비게 되는 데 오는 자유와 불안을 인터뷰에 담은 어느 작가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자신은 종종 숲을 걷는 상상을 한다고. 그곳은 비자라든지 여권이 필요하지 않고 국경의 앞에서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 대해 구구절절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거대하고 울창한 숲 말이다. 출생지니, 국적이니 구사할 수 있는 언어니 인종이니 하는 것들은 국가라는, 대지에 인간이 임의로 정해놓은 경계의 기준에서만 중요하다고. 상상의 숲을 거닐다 보면 이들의 개념은 흩어져 자신이 밟고 서 있는 이 땅이자 우주 전체가 자신의 고향이자 살고 있는 터전이자 살아갈 미래라는 말. 그러니 국적은 나를 설명한다는 적극적인 역할이 아닌 오히려 나를 구성하는 속성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으레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고향이 그립지 않냐고.


이곳에서는 고향을 가리키는 'Heim'과 고통인 'Weh'라는 단어를 합쳐 'Heimweh'라는 향수병을 뜻하는 단어가 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늘 마음만 있으면 고국의 사랑하는 이들을 기술의 발전 덕택에 영상통화로든 전화로든 보고 들을 수 있고 그곳의 땅과 하늘은 이곳에서도 같을 테니 딱히 그립다고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득 이곳의 아름다움을 마주 선 다음에는 꼭 가족과 벗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움도 향수병의 범주에 속한다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근사한 풍경을 근래 자주 마주하는 가운데 떠오르는 얼굴들도 깊어져간다.


Oft denke ich daran, in die Berge oder Wälder zu gehen, wo ich nicht erklären muss, wer ich bin und was für einen Pass ich habe oder warum ich kein Visum besitze. Worte wie Exil, Flüchtlinge, Emigrant sind nur für Gemeinschaften, Länder, Staaten relevant. In der Natur bin ich frei, und die Versuchung ist groß, zu denken, dass dieser Planet meine Heimat ist und dass ich mich überall auf ihm zu Hause fühlen kann.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272일.

브런치북 연재 시작으로부터 +14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

이전 04화 여름 막바지, 이지 컴 이지 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