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의 「한 그루와 자전거」에 관한 명상
한 그루와 자전거
저 나무는 한번도 멈추지 않았네
저 자전거도 멈추지 않았네
사람들의 마을은 멈춰진 나무로 집을 짓고
집 속에서 잎새와 같은 식구들이 걸어나오네
멈추지 않는 자전거의 동심원들은 자주 일그러지며
땅 위에 쌓여갔네 나무의 거름 같은
동심원들 안에서 사람의 마을은 천천히 돌아가네
차륜의 부채살에 한 그루의 그림자를 끼워넣으며
자전거는 중얼거리네
멈춘 나무 사이에서 멈추지 않는 자전거가 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한 그루와 자전거가 똑같이 멈추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천천히 멈추면서 한 그루가 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
*
오래 전 이맘때 봄,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시(詩)를 적어 건넸다. 하나의 행성과 하나의 행성이 만나 동시에 멈추는 일의 어려움과 무상함을 담고 있던 그 시는 이별 통고장이나 다름없었다. 시를 받아든 사람은 운이 몹시 나빴다. 생애 처음으로 읽어본 시가 이별 통고장이었으니 그는 그 자리에 꼼짝없이 굳어버렸다. 그가 읽은 단 한 편의 시는 분리가 내용의 전부였다. 그 내용을 그대로 먹어 치운 그는 바위처럼 딱딱해졌다. 무엇도 투과시키지 못했다. 곁에 머무는 공기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했다. 스쳐 가는 봄의 손길을 느끼지 못했다. 사물들 안에 담긴 시를 결코 퍼 올리지 못했다. 사랑도 봄도 시도 깃들지 못하는 그의 가슴은 사막이고 폐허였다. 그러나 사막은 안달하지 않았다. 폐허는 구걸하지 않았다. 그저 바위처럼 견뎠다. 남겨진 그의 방식이었다. 시간이 멈추었다. 마음마저 침묵하게 된 그 땅으로, 어느 날 한 사람이 돌아왔다. 깊이 모를 우물 하나가 고여 있었다. 그는 지친 손으로 시를 적어 수면에 띄웠다. 시는 원을 그리며 돌았다. 먼 땅을 돌아 바퀴라는 동심원을 얻은 자전거에 관한 시였다. 침묵의 땅에 하나밖에 없는 우물이 피로에 전 그의 시를 꿀꺽 삼켰다. 마침내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다리를 땅속으로 쭉 뻗으니 뿌리가 되고, 팔을 창공 가득 펼쳐 드니 가지가 되며, 입김을 후 불어내니 가지마다 푸르디푸른 잎사귀가 매달렸다. 삽시간에 거대한 나무로 둔갑한 한 그루의 존재 앞에서 돌아온 한 사람이 탄식하듯 외쳤다. “오, 너는 드디어 멈추었구나!” 나무 곁에는 수만 겁을 정신없이 달려온 자전거 한 대가 세상의 모든 숨을 죽이며 조용히 멈춰 세워져 있었다.
*
종종 말벗이 되어주던 한 사람이 멀리 타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며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의 둥그런 눈은 여전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차고 넘쳤지만, 눈을 제외하고는 사지 말단까지 모두 절망의 옷을 두른 채였습니다. 왜 떠나려는지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말을 하고 움직일 때마다 죽음을 앞둔 노인처럼 쇳소리가 나던 그는 그날 알파벳 필기체를 닮은 글씨로 시 한 편을 적어주었습니다. 허수경이라는 몸집 자그마한 시인의 「한 그루와 자전거」라는 시였습니다. 읽어본 적은 있으나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한 시였습니다. 때문에 처음 읽는 시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니 처음 읽는 시였습니다. 흐르는 바람처럼 쓰인 글자들에 잉크 냄새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그 시는 처음 보았으니까요. 시를, 글자를, 행간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멈춘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필생의 질문인 양 내면에서 솟아올랐습니다. 그 질문은 그가 떠나가고 남겨진 시간의 벤치에 앉아 쇳소리를 내며 지나쳐가는 노인들을 바라볼 때마다 떠올랐고, 읽어본 모든 시가 낯설어질 때마다 떠올랐으며, 종국에는 수시로 아무 때나 떠올랐습니다. 마침내 한 가지 앎에 이르렀습니다. 그 질문에 사로잡히는 순간만큼은 ‘나’라는 것이 멈춰 선다는 사실을, ‘나’가 상실된다는 것을. 그 빈틈이, 그 정지가 ‘나’로 하여금 숨을 쉬게 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이후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말벗에 불과했으나 말벗 이상이었던 그가 구체적인 파동으로 몸속을 들락거렸습니다. 현존의 질량을 체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비로소 ‘나’는 말벗밖에 가질 수 없도록 만든 그 이전의 또 다른 그를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의 나이테는 스물네 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서른두 개의 동심원이 소용돌이치는 우물 앞에 서 있습니다. 말벗밖에 되어주지 못한 ‘나’를 용서하고 싶어 하는 얼굴이 보입니다. 용서하고 용서하고 용서하면, 용서받고 용서받고 용서받을까요. 요동치는 물결 사이로,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우물이 고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