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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각인하는 판화가

케테 콜비츠 | 카테리네 크라머 지음

by 김담유
부끄럽다. 나는 아직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 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 어린 시절과 소녀시절에는 혁명과 바리케이드를 꿈꾸었었다. 지금 내가 젊다면 틀림없이 공산주의자였을 텐데. 아직도 그 꿈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가 벌써 50대다. 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페테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이 지구상에 세워질 공산주의 사회는 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마음속으로는 늘 회의한다. 나는 평화주의자임을 한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다. ……제발 사람들이 나를 조용히 내버려두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나 같은 여류예술가가 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똑바로 제 갈 길을 찾아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감동을 느끼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리프크네히트의 정치노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또 그 그림을 노동자에게 증정할 권리가 있다. 안 그런가?
―케테 콜비츠의 1920년 어느 날의 일기, 《케테 콜비츠》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1903)


케테 콜비츠(K the Kollwitz 1867~1945)는 "20세기 전반의 격동기를 뜨겁게 살다 간 독일의 여류화가" "판화의 세계를 독보적인 위치로 끌어올린 판화가" "프롤레타리아 미술의 선구자" "미술의 기능과 역할을 사회 속으로 제고시킨 작가" 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1991년에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케테 콜비츠》를 우연히 손에 넣으면서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절판된 누군가의 소설을 제본하기 위해 옛 시절(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시간과 공간 근처에 그곳이 있지만) 학교 근처에 갔다가 녹두 서점, 아직도 지하에 사회과학 서적이 즐비한 그 구멍책가게에서 그녀를 만났다. 뭐랄까? 누군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서점 안에는 7년 전에도 그곳에서 책을 팔고 있던 주인과 우연히 들른 나, 그렇게 둘뿐이었다.


장부 정리에 여념이 없는 주인이 날 쳐다보았을 리는 만무하고, 대체 누구지? 다시 펼쳐들고 있던 책으로 고개를 돌리다 책장에 꽂혀 있는 그녀를, 마침내 보았다. 한쪽 눈은 암흑에, 한쪽 눈은 광명에 드러내놓고 있는 늙은 여자였다. 한쪽 팔로 깊게 주름 패인 이마를 짚고서. 다물어진 입은 천 년쯤 그렇게 먼지와 함께 다물려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판화가라는 사실을, 의사였던 남편과 빈민굴에서 빈민들과 함께 살아냈던 시궁창의 예술가라는 사실을, 심오하고 동요하지 않는 엄숙함을 지닌 혁명가였다는 사실을, 페테라는, 1차 세계대전에서 자진 전사한 아들을 가진 어미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그녀를 후루룩 넘긴다. 그날의 심경에 따라 유난히 시선이 가는 도판에 코를 박는 일은 詩를 쓰는 일보다 즐겁다. 그녀의 판화는 강하다. 그리고 단호하다. 그것은 침묵이지만 울음이기도 하다. 고 나는 생각한다. 비명, 울부짖음, 신음소리, 인간이 가진 온갖 짐승의 소리가 거기에 있다. 고 나는 믿는다. 믿고 싶은 만큼, 느끼고 싶은 만큼, 그녀는 나를 내버려둔다.


눈을 뜨고 있는 아이 혹은 여자 혹은 남자 혹은 부모 등은 정지되어 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는 아이 혹은 여자 혹은 남자 혹은 부모 등은 어딘가를 지향하고 있다. 경악과 침묵, 이 두 지점이 그녀 안에 공존한다는 것이 놀랍다. 그녀는 예술가인 것이다. 그러니 이 시대착오적인 독후감이 씌어진다는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의문을 갖지 말자. 고 생각하며 나는 자판을 두들긴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날들이 반복되었으면 한다. 평정심을 잃은 날들이 내 生을 좌지우지하길 바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용기 있게 살아낼 수 있을까? 콜비츠는 아들 페테를 전쟁통에 잃고 그 상실감을 조각으로 위안 삼았다. 그 작업 가운데 씌어진 일기 한 구절.


페테의 기념비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야 한다.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할 생각은 없다. 내용이 형식이라는 말을 과거에는 늘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지만 그 말이 진실이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새로운 내용에 대한 새로운 형식이 요즈음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1917년 11월)
이 거작을 부술 준비가 오늘 완료되었다. 내일이면 부순다. 신들린 듯이 매달렸던 작품을 이제는 부순다. 사랑스럽게 미소를 짓는 페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작업 당시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열정 그리고 눈물들을 쏟았던가를 회상했다. 나는 페테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시 기념비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작업은 다만 지연되는 것뿐이다. (1919년 1월 25일)


죽은 아들의 조각상은 1931년 <부모>라는 조각상으로 완성되었다. 그녀는 그 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무릎을 꿇은 그 어머니의 눈은 수많은 무덤들을 주시하고 있고 두 팔은 그 무덤 속에 누워 있는 모든 아들들을 향해 뻗고 있다. 아버지 역시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품속에 꼭 끼고 있다. (1925년 10월 13일)


<부모>(1931)


내가 지금 그녀를 해석할 수 있는 코드는 '인간'뿐이다. 그러나 모든 좌절한 것들의 핏내 어린 흔적은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흔적의 위력은 무섭고, 그 흔적을 기록하는 일들은 한 땀 한 땀 신중해야 한다. 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나는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녀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 있어 몇 안 되는 행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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