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어떤 고백
고백컨대 나는 그를 저버릴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뼈마디 앙상한 손으로 내 심장을 숙주 삼아 동맥과 정맥의 뒤바뀐 운명을 노래하는 그를 저주해본 적이 있다 듬성듬성 이 빠진 폐허를 과부 가랑이마냥 벌리고 헤벌쭉 웃는 그를 오, 심장 따위를 헐값에 넘겨버린 적이 있다
그자가 입을 벌리면 안개도 아니고 권태도 아닌 것들이 쥐 썩는 냄새처럼 속절없이 부풀어올라 내 망루 끝을 새나갔다 그때면 세계의 바깥이 암담하여 미래의 애인마저 저주스러웠다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케르베로스*가 지키는 문 저편에서 죽은 자들이 죽지 못해 구더기처럼 기어올라왔다
썩은 내장을 거슬러 위장을 지나 식도를 타고 사력을 다해 터져 나오는 독거미 독거미들, 기어코 존재의 망루 밖에 게워지는 천 년 전의 어떤 고백, 만 년 전의 어떤 비명이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지옥의 문을 지키는 삼두견(三頭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