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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담유 Jan 27. 2019

불가해한 우리의 땅

무인도를 위하여 | 신대철 지음

신대철 시인의 『무인도를 위하여』는 읽을 때마다 달리 읽히는 경이로운 시집이다. 생명력 있는 시, 살아 있는 시, 이보다 더 강력한 시가 있을까? 45년생, 칠순을 넘긴 시인의 첫 시집. 초판 발행일로 미루어볼지면 이 시집은 그의 나이 서른셋에 탄생한 '물건'이다. 서른셋의 눈이 그려낸 풍경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묵직하고 한스럽고 아름답고 절묘하고 농익고 거대하고 환상적인 세계가 『무인도를 위하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조가 강렬하지 않은 탓에 이 시집의 값어치가 도떼기시장판 같은 목소리들에 잠길까봐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지만, 한갓 기우일 뿐이리라. 이 시집이 그 많은 목소리들을 뚫고 내게로 온 날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 시집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와 더불어 내 가장 가까운 책장에 꽂혀 내 머리맡 꿈들을 관리하고 있다.


"꿈틀거리지 않으면 시간은 모두 까마귀가 된다"는  마지막 시의 종결구 앞에서 훅, 숨을 들이켠다. 발 없는 지렁이의 유일한 보폭인 꿈틀거림으로, '꿈틀'이라는 지난하고 다난한 마음의 태도로 다시 시집 앞으로 돌아가 그의 인간 군상들을 살펴본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인간은 세 부류로 나뉘어 있구나ㅡ'산이 키운 한 인간', '인간이 키운 한 인간', '한 인간'.


(아마도 세 부류 인간의 복합체일 법한) 시의 화자는 과거의 두 인간을 버리고 미래의 '한 인간'을 찾아, 떠도는 눈발처럼 산중에서 사람 그리운 날을 서성이고 있다. 젊어 산을 떠나간 사람들이 시체로 돌아와 묻히는 산중에서 나비떼를 좇는 소년이 되었다가, 산속 빈 집의 창가에서 잡나무들을 휘감고 올라온 칡덩굴과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가, 그리하여 칡꽃을 피우게도 하는 '그'는 왜 산으로 온 것일까? 왜 주인 없는 산속, 인가의 불빛 하나 되비쳐오지 않는 암흑, 추위와 외로움을 맨몸으로 견디고 있는 것일까? 왜 그 모든 것들을 떨치고 산속으로 들어와 산속을 걸어 잠그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흔적 하나 없는 깊은 산중에서 식물들이 저들끼리 쌓이고 썩어가고 있는 때, 이 '무인도'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그는 물소리와 산울림 소리에 가만히 귀를 놓는다. 하지만 이 고요를 깨뜨리며 무시로 쏘아 올려지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총성이다. 아름다운 풍광들 사이에서 순간순간, 괴기스럽게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족제비와 덫에 걸려들어 오도가도 못하는 산짐승, 철책에 가로막혀 제 땅을 빼앗긴 채 시들어가는 풀꽃들의 흐느낌이, 소리가, 낮밤 가리지 않는 총성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이러한 그의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은 인간이 키운 인간을 버린 마당에도 그의 영혼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형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자 또 하나의 무인도를 건너가고 건너오는 한반도라는 환멸이여. 인간이라는 사막이여. 그러니 이 텅 빈 산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살기(殺氣)를 다스려야 하고 불을 삼켜야만 한다. 그의 눈에 잡힌 저 멀리 보이는 섬,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가 물거품을 버리러 가는 곳, 무인도가 어찌 저곳뿐이겠는가. 산의 내장을 더듬는 자의 현존,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인도다.


하지만 그는 노래한다. “無名氏, / 내 땅의 말로는 / 도저히 부를 수 없는 그대……”라고.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 우리가 만난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 사람이 아니고 / 디딤돌이다”라고. 바로 무인도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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