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담유 Feb 23. 2021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 에세이 편집자 분투기

에세이 만드는 법 | 이연실 지음 | 유유

아아, 이연실 편집자의 『에세이 만드는 법』은 정말이지 독후감을 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유유 출판사가 '책 만드는 법'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들은 다름 아닌 편집자이다. 『문학책 만드는 법』(강윤정), 『경제경영책 마드는 법』(백지선), 『역사책 만드는 법』(강창훈), 『실용책 만드는 법』(김옥현), 『인문교양책 만드는 법』(이진), 『에세이 만드는 법』(이연실)까지 6권이 나왔고, 앞으로  『사회과학책 만드는 법』(김희진), 『과학책 만드는 법』(임은선)이 나올 예정이다. 어쨌거나 해당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스테디셀러부터 베스트셀러까지 유의미한 책들을 만들어온, 이른바 '전문 편집자'가 자기만의 편집 노하우를 밝히는 매뉴얼 콘셉트의 시리즈로서 출판계에 몸담고 있거나 관련 직업군을 탐색하는 이들에게 맞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 『에세이 만드는 법』은 그런 목적성을 차치하고서라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탐독할 만한 책이다. 바로 저자 이연실 편집자가 열정 에너지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전혀 만나본 적이 없지만 글만 읽어도 충분히 느껴진다. 그녀가 사람과 책에 애정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고되고 지루한 편집 일에서 의미와 재미를 캐낼 줄 알고, 그러다 마침내 즐기게 된 사람이라는 것을. 거기다 승부사 기질까지. 한번 꽂힌 사람의 이야기는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낮이든 밤이든 서울이든 지방이든 직접 찾아가 노크하는 스타일.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이 진리를 몸으로 체득해 책으로 보여주는 편집자. 참 바지런히 만들어왔구나, 다시 보고, 끄덕끄덕 인정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녀가 이미 준비된 한 사람의 작가라는 걸 이 책은 여실히 보여준다. 에세이 편집에서 중요한 제목과 디자인 콘셉팅, 띠지 문안과 보도자료 작성, 저자 발굴과 관리 비법까지 총 14편의 글을 무척 짜임새 있게 써내려갔다. 남의 원고를 구성하는 능력과 내 글을 구성하는 능력은 별개의 영역인데, 그녀는 이 두 가지가 다 가능한 듯. 출판 편집 매뉴얼 성격의 책을 재미와 감동이 가득한 한 권의 에세이로 써냈다. 나는 앞으로 그녀가 만드는 책뿐만 아니라 써나갈 글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려 한다.


얇지만 단단한 이 책의 미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건 그녀의 일에서 사람이 보인다는 점이다. 김훈, 김용택, 서명숙, 김이나, 하정우... 이름 석 자만 대도 동네방네 널리 알려진 사람들의 '예외적 순간'을 그녀의 글에서 '거북하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을 바라보는 각도와 태도가 참 좋다. 무엇보다 예술인의 객기에 눌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생활인의 미덕을 서사의 장으로 끌어낼 줄 아는 자기 신뢰와 뚝심이 참 좋다. 그녀가 말하는 에세이의 보편성과 일상성은 그녀의 성품과도 꼭 닮아 있지 싶다. 여튼 그녀가 전해준 유명인들의 말과 문장에서 김수의 격려는 단연코 압도적이다. 내게도 큰 위로가 될 듯싶다(예술인 모드에서든, 편집자 모드에서든). 종종 꺼내 읽어봐야지.




"음... 연실아, 작가들은 그렇게 멋지거나 예의 바른 인간들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지. 예술가란 기본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거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가족을 먹여살리지' 샆은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고민을 할 때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대체 뭘까' 따위의 뜬구름 잡는 고민을 하는 이기적이고 철없는 인간들이기도 해.

어쩌면 작가는 자기만의 '부루마불' 한 판에 몰두하는 집념과 광기의 플레이어들인지도 몰라. 부루마불은 이 세계와 꼭 닮았지만, 결단코 이 세계와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그러나, 그럼에도 부룩하고, 부루마불이 자기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는 영영 부루마불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결코 잘할 수도 없고. 바로 이것이 작가의 순수함이자 한계이자, 장점인 거야.

작가는 이 대책 없고 답도 없는 부루마불을 끝까지 해 보기로 한 콜럼버스 같은 외골수에 무데뽀들이고, 편집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등대와 연료와 식량과 물, 나침과 업데이트된 지도를 주는 사람이지. 그러다 보면 웃기게도, 이 말도 안 되는 철부지들이 가끔 막 굉장한 짓도 하고 그런다?!

나에게는 문학동네 염현숙 대표가 그런 편집자였어. 소설이 안 써질 때마다 전화해서 하소연하고, 사네 못 사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낯 뜨거운 짓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따뜻한 격려도 했고, 뭐가 될지 모르는 내 소설을 믿고 계약해 주고, 더불어 무시무시한 마감 협박도 절대 잊지 않고, 이따금 '이 소설은 확실히 구려요'라든가 '글쎄요. 소설이 그 방향으로 가면 어쩐지 임진왜란 될 것 같은데?' 같은 냉정하고 정직한 평가도 해 주고. 나는 그 사람 덕분에 그나마 소설에 균형과 방향을 잡고, 아직까지 퍼지지 않고 계속해서 소설을 쓰고 있어.

연실아, 편집자가 작가를 너무 아끼다 보면 이토록 훌륭한 작품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과 인간과 편집자의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 사람들은 예술가에게 대단한 기대를 해. 이런 훌륭한 작품을 쓰는 분은 인생을 제대로 알겠지, 지혜와 인품이 있겠지. 지혜와 인품은 개뿔! 작가라는 것들은 집안에 쓰레기봉투가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러니 작가들은 지도를 가지고 있는 지혜로운 현자가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검투사로 봐 주면 딱 적당한 포지션이야. 그들은 자신도 전혀 알지 못하는 어둠과 무작정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지. 그들은 어리고, 두렵고, 괴롭고, 끝없이 지난 삶을 후회해.

작가에게 많은 걸 요구하거나 작품 외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마. 잘하려면 미쳐야 되고, 미친 사람들은 작아. 협소하고 편협해. 하지만 그렇게 좁기에 깊이, 아주 깊숙이 내려갈 수 있는 거지. 그리고 편집자는 이 미친 자들에게 약간의 안쓰러움과 드넓은 애정을 품고서 그 좁지만 끝 모를 깊은 세계에 넓이를 확보해 주는 사람이야. 괜찮으니 계속 부루마불을 해 보라고 새 판을 깔아 주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사람.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는 이런 멋진 말이 있지.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

나는 스티븐 킹이 세계적인 작가가 된 이유가 그가 작가의 정확한 꼬라지와 이 비밀을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도 책을 낼 때는 언제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해.

나는 친구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버림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편집자에게 버림받으면 끝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평 없이 곤경을 견디는 자의 어떤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