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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Mar 03. 2023

가족, 부상, 생활고) 거창한 것만이 꿈은 아니예요.

(이 글은 심리카페에서 새로 준비하고 있는 독서모임을 만들어가는 30일간의 기록과 생각을 담고 있고, 이 글이 열아홉 번째의 글입니다.)



여기,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할아버지와 20대 초반의 청년과의 대화가 있습니다.



"축구 다시 하려면 테스트 같은 거 받아야 하는 거지?"


"아이 무슨 소리예요, 아직 몸도 다 못 만들었는데, 준비되려면 한참 멀었어요."


"응,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마."


"그럼, 뭐, 무작정 들이밀어요?"



내가 살아보니깐, 완벽하게 준비되는 순간은
안 오더라고, 그냥 지금 시작하면서 채워.



"아끼다 뭐 된다는 말 알지? 무작정 부족해도 디비 밀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설레고 신나기만 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현실과 부담감이 시도를 그만두고 싶게 만들기도 하죠. 어떤 매뉴얼도, 어떤 확신도,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해나가야 하는 경우에 있는 지금의 저와 비슷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만듭니다.


위의 대화는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드라마, 그리고 보게 되었던 웹툰이었던 '나빌레라'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나빌레라는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할아버지와 스물셋에 방황하는 발레리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할아버지인 덕출은 은퇴한 우편집배원입니다. 장남으로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장남으로써,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온 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발레리노인 20대 청년 채록을 보게 됩니다.


발레리노의 모습을 보여주는 채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고 무언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죠.


그래, 인생 마지막으로 해보자, 나 발레를 해보련다.



전, 이 표현을 접하면서 제가 심리카페를 시작할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과 상황들에 놓이게 되었던 30대 후반, 결혼자금으로 생각하고 있던 돈을 갖고 만들었던 것이 지금의 심리카페였습니다. 많이 지쳤고, 많이 자포자기 상태였었죠.



제가 무기력에 관하여 흘러지나치지 않고 이렇게 한 달의 시간을 들여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다루고 있는 이유도 누구 못지않게 무기력한 상태에 있어봤었으니까요. 사실, 그래서 어떤 방법 같은 말을 하지 않는 이유도 그러하죠.



간단한 몇 가지 방법? 그런 것으로 벗어날 수 있을 무기력이었으면 진지하게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지는 않고 있겠죠. 이 드라마의 덕출도 그러했지만, 덕출로 하여금 무언가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주고 가슴을 뛰게 해준 채록 역시 또 다른 무기력에 빠져 있었던 인물로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채록은 무용원 휴학생으로, 6살 때부터 축구를 했는데 입시를 앞둔 고3 때에 자신이 축구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채록을 힘들게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계획을 짜고 계획대로 채록을 훈련시켰던 축구 감독인 아버지였고, 다른 하나는 부상과 생활고를 겪고 있었던 것이죠.



환경과 몸과 현실. 이 세 가지 모두 채록을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었죠.



채록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 좋아하는 게 영영 없을 것만 같아', '이제... 뭐 하지?'



이런 식의 생각은 타이트하게 분석하고 계획을 짜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경우, 너무 쉽게 흘러가게 되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유연한 생각을, 시도와 시행착오라는 것을 아예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버리니까요. '괜한 짓, 쪽팔려지고 민망해질 일 아예 애당초 하지 말자'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하죠.



이 역시 무기력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점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요. 부담감을 올리면 올릴수록 집중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 집중을 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환경 속에서는 지치고 힘들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춤을 추는 승주라는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해 발레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전의 글에서 다루었던 내용이었지만, 우리가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게 해주는 것은 어떤 방법보다 무언가 해보고 싶게 만드는 누군가들의 모습들입니다.



우리가 무기력에서 벗어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영감과 기운이죠. 독서모임을 준비해 가고 있는 저도 막상 막막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시간들 속에서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야 되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은 이유가 '나빌레라'에 나오는 채록과 비슷합니다. 저 역시 채록처럼 무언가를 마음 편히 유연하게 시도해 보기에는 부담감을 크게 갖게 만드는 꼼꼼하고 완벽주의 성향의 어머님이 계시고, 저는 저대로의 부상과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계속해보고 싶은 것이 생겨 집중하고 정성을 들여서 하고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덕출이 채록에게 해줬던 말처럼, 그렇게 하고 있답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찾는 그런 연남동의 독서모임, 연남동의 심리카페를 꿈꾸면서요.




그냥 지금 시작하면서 채워,
무작정 부족해도 디비 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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