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아픔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저에게 아픔을 주셨던 점도 많으시지만, 그보다 몇 년 전 중증 근무력증이라는 병으로 인해 중환자실에 계셨어야 할 정도로 생사가 오가는 시간을 보내셨어야 하셨어요. 그때에 비해서는 그래도 일상생활을 하실 수는 있게 되셨지만 여전히 건강이 안 좋으시죠. 갑자기 생기신 중증 근무력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인해 지금은 오랜 시간 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많이 피곤해지시고 건강을 신경 써야 하고, 계단을 오르실 수가 없어서 카페를 정리하기 전에 한번 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서 드려보지도 못하는 것이 아쉽고 마음이 먹먹하게 느껴진답니다. 평지를 걸으시는 것도 이제는 힘드신 상태이시니까요. 병으로 인해서요.
8년 전 연남동에 카페를 열었을 때, 오셔서 창가 자리에 앉아서 제가 내린 커피를 맛보시고는 커피가 맛있으시다고 좋아하셨었거든요. 제가 매일 가던 카페 사장님에게 얘기를 해서 거기에서 사용하는 원두를 받아서 커피를 내려서이기도 하겠지만, 창 밖으로 바로 분수대에서 분수가 나오고 나무와 잔디들이 있고, 어리게만 느껴지던 막내아들이 그라인더로 커피 원두를 갈고 커피머신에서 에스프레소 샷을 추출해서 커피를 만드는 모습이 커피 맛을 더 맛있게 느껴지셨던 것 같습니다.
카페를 접기 전에 다시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어 아쉽고 그립게 느껴지는 시간이 어머니를 다시 제 카페에 모셔서 정성 들인 커피를 내어드리고 함께 분수대 분수를 보며 이야기 나누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갑게 대화를 나누고 그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특별한 말들은 없어도 그런 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은 특별한 일이죠.
많은 상실과 떠남의 경험들을 겪다 보니 이제는 함께 있을 수 있는 순간들의 특별함을 잘 알게 되었는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그렇게 녹녹하게 있지는 않네요. 더욱이 계속 걱정 끼치고 염려하게 만들어드리는 것에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은 잊고 지우려 해도 떠나지 않게 되고요.
어느 순간부터 연남동 심리카페라는 이 공간에는 저의 많은 순간들의 장면들이 쌓여 있어서 카페 안에 있다 보면 너무 마음이 힘들 정도로 많은 장면들이 떠오르고 금세 마음이 그리워지고 우울해져서 힘들어지곤 했었습니다.
좋았던 순간들이 있어서 그립고, 그 좋았던 순간이 이제는 저에게 없어져서 아프고요. 8년의 시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에 멀미가 날 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합니다. 친했던 친구와 함께 노래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헀었던 것이 떠오르면서 그때까지는 연락을 나누고 있었구나를 알게 되고요, 많은 축하의 장면들이 떠올라 그때는 그런 일들도 여기에서 함께 했었구나로 생각하게 되고요.
누군가들을 만나게 되고, 알게 되고, 함께 하고, 그리고 떠나가고 남겨지고, 참 열어서 펼쳐보기 버겁게 느껴지는 다이어리인 것만 같아요. 더욱이 누군가들과 함께하고 축하하고 이야기 나누었던 그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에서 감정이 뭉클해지고 복받치게 되네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 자리에서 예약 손님을 상담해드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여러 가지로 여기는 저에게 너무 복잡하네요. 너무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어서요.
사실 저도 너무도 위로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데 그런 것을 접하지 못하고 생활한 지가 참 오래된 것 같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를 찾아오는 분들의 시간과 마음을 읽어드리고 위로를 해드렸지, 제가 보내고 있는 시간과 마음에 대해 누군가가 읽어주고 위로해 준 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시간과 마음을 읽고 살펴드릴 수 있어진 것이지, 내 시간과 마음이 담담해지고 아무렇지 않아 진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동안 저에게 특별한 시간과 공간이었던, 많은 순간과 장면들이 있었던 이곳이 이제 며칠 뒤면 완전히 철거되고 없어져버린다는 것에 마음이 울적해질 때가 많은데 그냥 혼자 그런 마음을 누르고 있었죠.
제 마음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어머니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왔었습니다. 저의 심정에 대해 읽어주시는 말을 해주시는 것이 처음인 것만 같을 정도로 지금 내가 받은 문자가 현실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익숙하지 않고 너무도 낯설었지만 동시에 너무도 감사했었습니다.
누군가가 지금의 내 마음을 좀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랐었는데, 그것이 수십 년간 위로와 공감이 아닌 정확함과 가르침이었던 어머니에게서 접하게 되는 것이 여기에서 8년의 시간을 보내온 저에게 내려주신 선물 같이 느껴졌었습니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처음 이 브런치북을 쓰기 시작했었을 때, 브런치북의 제목을 <안녕, 고마웠어, 연남동 심리카페>라고 떠오르고 그려지는 말로 정했었습니다. 8년의 시간에 대해 떠올리고 하나씩 정리하듯 있었던 일들에 대해 적다 보니깐 마음속에서 더 되뇌어집니다.
고마웠어, 연남동 심리카페
저에게 많은 것들을 주었고, 저를 힘들고 슬퍼질 때 그래도 잡아주고 있었던 곳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곳이 없었다면 나의 삶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면 정말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요. 저에게 삶을 잘 견디고 계속 살아갈 수 있게 있어주었던 것에 대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위로와 공감의 말을 들어볼 수 있게 해 준 것도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시멘트 벽만 있는 곳을 인테리어 업자를 끼지 않고 직접 하나하나 만들고 손을 댔었죠. 완성된 모습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지금의 모습이 당연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지금의 모습이기 위해 정성을 많이 들였던 곳인지라 '8년간 손때 묻은 곳이어서 마음이 안 좋겠구나'라고 말해주시니 마음이 더 뭉클해졌었습니다.
'8년간 손때 묻은 곳'을 이제 과거와 추억으로 남기고 문을 열고 나올 때가 다가옵니다. 문을 열고 나오면 이제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때가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미련과 아쉬움, 그리움과 뭉클함이 가득하지만 그것을 말로 풀고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죠. 간직해서 일부는 추억하며 지내고, 일부는 현실의 시간을 살아가는 데에 여러 가지 모습과 형태로 나오게 되겠죠. 언제나 모든 이별과 떠남이 그러해야 했던 것처럼요. 그리고 언제나 절 떠나갔던 것들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던 것처럼요.
글을 쓰다가 잠깐 자리에 일어나 카페 안을 둘러보는데 몇 년 전에 적었던 말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안녕, 잘 왔어~'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 밑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적었습니다. 3일 뒤면 없어지겠지만요. 마음은 간직하기보다 표현하고 남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적고 사진으로 찍어 남겨봅니다. 이번에는 그래보고 싶습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애틋한 곳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