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다시 걷는 중

눈부신 여름

by 글 쓰는 여자


사고 한 달 만에 여름이는 걷기 재활을 시작했다. 둘째 날, 외과 간호과장은 원칙대로라면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다면서 재활실로 재준을 불러, 여름이가 한 발 한 발 걷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게 했다. 여름이가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그녀가 너무 감격스러워해서 재준은 도리어 제대로 기쁨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했다. 간호과장은 그 영상을 중환자실로 보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또랑또랑한 이목구비와 명쾌한 말투를 지닌 간호과장은 매사에 똑 부러지게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서인과 재준은 그녀를 신뢰했다.


며칠 후, 여름이가 스스로 몇 발을 떼어 걸을 수 있게 되자 간호과장은 서인에게 여름이와 함께 중환자실을 방문해 보자고 제안했다. 입원실에서 중환자실까지 거리가 꽤 있었고, 여름이가 허벅지 통증으로 힘들어했기에 서인은 나중에 가자고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한껏 들뜬 모습을 보고,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휠체어를 타고 중환자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간호과장은 여름이에게 일어나 걸어 들어가자고 했다. 여름이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수액걸이를 꼭 붙잡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브레이크 없는 바퀴 때문에 서인은 불안한 마음으로 여름이를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자 미리 연락을 받은 듯 여름이를 담당했던 중환자실 선생님들이 양쪽에 줄지어 서 있었다. 마치 레드 카펫 위의 배우를 맞이하듯,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여름이를 향해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죽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렇게 걷게 되다니… 기적이에요, 모두가 감탄했다. 나이가 있음 직한 간호사가 서인에게 다가와 눈물을 글썽였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제가 다 눈물이 나네요. 그녀는 서인을 꼭 안았다.


여름이는 모두의 시선이 민망한 듯, 옅은 미소만 머금었다. 간호과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건 남겨야 해! 모두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기적을 지켜본 사람들의 환한 웃음과, 이제 막 걸음을 떼는 여름이가 있었다.





사고 후 3주가 지나면서, 여름이의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고 사흘 전까지의 일들이 며칠에 걸쳐 폭풍처럼 밀려오자, 여름이는 크게 혼란스러워했다. 전날에는 예고 입시를 준비하던 순간이 떠올랐고, 그다음 날에는 예고에 입학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곧 사고의 날까지 기억해 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은 여름이에게 사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걸까, 서인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숨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결국 서인과 재준은, 여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사흘을 이야기해 줄 수밖에 없었다.


사고가 난 지 5주가 되던 평온한 일요일 오후, 서인과 재준은 휠체어에 탄 여름이와 함께 병원 1층 로비의 카페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천장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조명은 낮은 햇살과 섞여 로비를 은은하게 채우고 있었다. 서인은 테이블 위에 놓인 따뜻한 라테의 곱고 잔잔한 거품을 바라보았다. 재준이 입을 열었다. 늦잠을 자고 있던 토요일 오전에 경찰이 집으로 찾아온 일, 경찰이 내민 여름이의 사진을 확인한 일, 그리고 응급실로 달려가 여름이를 확인한 일을,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양손으로 커피잔을 감싼 서인은, 재준을 가만히 응시한 채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 여름이를 흘끗흘끗 바라보았다.


자신의 사고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 때문임을 알게 된 여름이는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재준의 말이 끝나고 서인이 몇 가지를 덧붙일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여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다르게 낮고 힘없는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내가 윤지처럼 그랬단 말이지. 10층에서 뛰어내린 윤지는 죽었는데, 왜 나는 죽지 않았지? 이렇게 다칠 거면… 차라리 죽는 게 좋았을 걸…. 참담한 내용과는 달리 여름이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비로소 사실을 이야기했다는 안도감은 잠시, 서인에게는 곧 새로운 불안과 슬픔이 밀려왔다.






여름이는 신경외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정형외과, 수부외과, 외과, 성형외과, 안과, 비뇨기과, 재활의학과를 오가며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MRI와 CT를 수차례 찍고, 각종 검사를 이어갔으며, 외과와 성형외과에서 허벅지 수술만도 여러 차례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재활치료 속에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여름이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낮에는 가을이가 방문해 일주일 만에 네 식구가 모였다. 카페에서 여름이가 가장 좋아하는 얼그레이 시폰 케이크에 열여덟 개의 초를 꽂고 속삭임에 가까운 축하노래를 불렀다. 가을이는 알바를 위해 떠나고, 세 사람은 병실로 돌아왔다. 노크 소리와 함께 외과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케이크를 들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병실로 들어왔다. 그야말로 깜짝 이벤트였다. 여름이의 열여덟 번째 생일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러, 드디어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 하지만 이 병원을 떠나는 것일 뿐, 전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집에서 잔 서인은 아침 일찍 도넛 매장에 들러, 재활의학과, 중환자실, 병동에 드릴 도넛을 샀다. 감사 카드 한쪽에는 오른손이 불편한 여름이가 왼손으로 힘겹게 글을 적었고, 반대편에는 서인이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카드 세 장을 채우고 난 여름이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


병동 의료진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7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을 거쳐 외과집중치료실, 35호, 3호실을 거쳐 마지막에는 다제내성균 감염으로 37호실에서 생활한 이여름 환자의 엄마입니다.


중환자실을 제외하고 한 달이 넘는 긴 병원생활을 마치고, 내일이면 이 병원을 떠나는 제 마음은 무척 심란하고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병동 의료진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전하고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알지도 못했던 섬망 증상으로 여름이가 힘들게 했던 순간에도, 부모인 저희의 크고 작은 질문과 부탁에도, 음압기 작동이 불안정해 하소연을 드릴 때에도, 빈뇨 현상으로 잦은 기저귀 교체를 부탁드릴 때에도, 늘 친절하게 대해주신 병동 선생님들 덕분에, 떠올리기조차 힘든 사고로 입원하게 된 딸의 엄마로서 저는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병동의 모든 선생님들도, 우리 여름이처럼 어느 부모님의 귀하고 소중한 따님, 아드님이실 텐데, 아픈 환자를 아낌없이 돌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그런 모습은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거론하며 감사함을 전하고 싶지만, 혹시 빠뜨리거나 틀리는 이름이 있을까 봐 조심스러워, 이렇게 모든 선생님께 마음을 전합니다. 모두 제 진심을 알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여름이는 재활병원으로 전원해 재활에 더욱 전념할 예정이며, 외래 진료도 계속 받을 계획입니다.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에 새로운 삶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병동 선생님들, 아픈 환자와 그 보호자를 돌보는 일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와 고충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환자를 돌보기 전에, 선생님들의 몸과 마음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다시 한번, 여름이를 잘 돌봐주시고, 유난스럽게 느껴졌을지 모를 저희를 이해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간호사 선생님들은 ‘이여름, 앞으로 꽃길만 걸어요’라는 문구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프린트해 준비해 주었다. 그 글귀를 들고 모두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름이에게 재활 잘하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선생님도 계셨다. 교대 근무로 모든 분이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의 따뜻함은 서인과 여름이, 재준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모두 모두.




이전 15화흩어진 나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