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곳에서

눈부신 여름

by 글 쓰는 여자



담당 간호과장의 추천으로 여름이는 재활 전문 병원으로 옮겼다. 어느 병원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재활치료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고, 외부에도 재활 트랙과 보행 치료장이 조성되어 있어 재활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는 그녀의 설명이었다. 서인과 재준은 무엇보다 병원이 집과 떨어져 있고, 자연 속에 있는 것이 맘에 들었다. 몸과 마음을 잘 치료하고 새로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병원은 도시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산과 강이 어우러진 전원 속 한적한 언덕 위에 평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도착한 그들을 먼저 맞이한 것은, 창밖으로 가득한 짙은 녹음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산에서 흘러내리는 햇살이, 마치 오래 기다린 손님을 맞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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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교통사고 전문 재활병원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교통사고 환자들이 많았다. 처음 병원에 들어섰을 때, 서인은 그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양쪽 다리를 절단하고 휠체어를 탄 사람, 양팔이 없는 사람, 뇌 손상으로 보기에도 중증인 사람들까지.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조차 서인은 잠시 머뭇거려졌다. 여름이가 비록 지금은 이곳에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처지에 감사함을 느끼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늘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엄마의 운명’인가, 서인은 잠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병원 환자들은 장기간 입원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4인 병실에는 각각 제법 큰 냉장고와 락커가 갖춰져 있었고, 주변에는 설거지와 목욕용품, 심지어 대야까지 가져다 놓은 것이 보였다. 보호자 침대 또한 다른 병원보다 넓어서, 함께 머무르는 동안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느껴졌다.


어느 날 서인은 휠체어를 탄 여자 아이를 보았다. 여름이보다 어린 환자는 거의 없었기에 서인의 눈에 띄었다. 아이는 비니를 쓰고 있었는데, 안쪽으로 흰 붕대가 보였다. 서인은 순간, 수년 전 영어 유치원에서 6세 반 학생이었던 그 아이임을 알아봤다.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은, 매일 유치원에 늦둥이 딸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가던 그녀의 엄마였다.


그 아이는 여름이보다 한 살 어렸고,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기에 유치원을 졸업한 뒤에도 가끔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서인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서인은 그 후로도 병원에서 그들을 여러 번 보았다. 만약 내가 병문안을 위해 온 거라면, 인사를 했을까? 서인은 잠시 생각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결국 눈을 돌리며, 다정했던 모녀에 대한 기억과, 영어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여름이를 떠올렸다.


엄마 서인과 함께 등원하고, 서인이 퇴근할 때까지 한 층 아래 피아노 학원이나 블록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던 여름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반드시 아파트 놀이터에 들러 해가 질 때까지 때로는 더 늦게까지 동네 아이들과 놀던 여름이. 지나가는 아이도, 머무는 아이도 모두 친구였던, 행복했던 시절의 여름이가 서인의 마음속에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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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에서 매일 교대를 하던 서인과 재준은, 이곳으로 옮기고 나서는 3~4일에 한 번씩 교대했다. 주로 외래진료가 있는 날 병원에서 만나 진료 후 교대를 하거나, 주말에 병원으로 와서 교대를 했다. 굳이 서울의 종합병원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곳의 편의 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1층에는 베이커리 하나와 편의점 하나가 전부였고, 편의점도 저녁 8시면 문을 닫았다. 보호자를 위한 식당이 없다는 사실에 재준은 청천벽력 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샌드위치와 커피를 좋아하는 서인은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다.


여름이는 매일 짜인 재활치료 일정 속에서 2개월을 보냈다. 언어치료, 전기치료, 로봇치료, 작업치료, 운동치료, 기구 치료, 심리상담까지, 하루가 빠듯하게 흘러갔다. 다리가 불편해 수치료를 받기를 바랐지만, 허벅지 상처 때문에 불가능해서 아쉬웠다. 저녁이면 서인이나 재준과 함께 병원 트랙과 산책로를 몇 바퀴씩 돌았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 냄새가 짙게 묻어났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길고양이는 그들에게 작지만 큰 기쁨이었다.


병원 2층에 자리한 작은 도서관은, 단조로울 수 있는 서인의 병원 생활에 작은 활기를 주었다. 아담한 공간이었지만 신간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 책들이 깨끗했다. 여름이가 재활치료를 받거나 잠든 시간에 서인은 책을 펼쳤다. 두 달 가까이 머무는 동안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읽었는데, 평소에는 잘 읽지 않던 《수레바퀴 아래서》, 《이방인》, 《인간실격》과 같은 고전도 그중 하나였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10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지금의 한국 교육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서인은 많이 놀랐다. 당시 독일 교육 제도는 조기 선발과 철저한 성적 경쟁으로 소수 엘리트를 길러내는 구조였다. 교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성직자나 관료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였고, 아이들의 개성과 삶의 즐거움은 뒷전이었다. 어린 한스는 그런 제도 속에서 기대와 압박을 동시에 짊어지고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수레바퀴는 그의 삶을 짓누르고 말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거의 자기 고백에 가까운 기록이다. 주인공 요조의 내면은 깊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있으며, 결국 자신을 ‘인간으로서 실격’이라 규정하며 몰락했다. 그의 이야기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서인은 며칠 동안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검색하며,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그의 반복된 방황, 자살 시도와 몰락의 연속을 따라가며 서인은 가슴속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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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병원에서는 ‘개원 10주년 기념 도서관 이벤트’가 열렸다. 주제는 ‘나만의 도서관은 어디인가요?’로, 자신만의 책 읽는 장소와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행사였다. 환자, 보호자, 병원 직원 모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참여자는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서인은 우수상을 받았고, 상품으로 1층 베이커리 이용권을 받았다. 여름이는, 엄마는 참 열심히 사는구나.라고 말하며 서인을 향해 웃었다.



독서의 계절,
나만의 도서관은 <막다른 길>이다.

막다른 길 앞에서 주저앉아 있던 나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책은 나에게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무리하게 애쓰기보다, 그것을 그대로 안아주면서 절망의 심연에서 나올 수 있다고 다독여주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결함 자체가 올바른 것이며,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하며,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라는 견고한 메시지를 내 마음에 새겨준 책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들에게, 우리는 폭풍 속에 있을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폭풍이 아니며, 결국 폭풍은 지나갈 것이라는 작가의 말을 전하며, 이 책을 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소똥 냄새가 풍겨왔다. 여름이는, 꺅 이게 무슨 냄새야,라며 코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서인에게 그 냄새는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마다 놀러 갔던 가평의 둘째 외삼촌 댁을 떠올리게 했다. 기억 속 외삼촌 댁에는 대문이 없었다. 양쪽으로 울타리가 있었고,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외양간이 있었다. 짙은 갈색의 큰 몸에 맑은 눈의 소 한 마리가 안에 있었고, 길고 굵은 혀를 바쁘게 움직이며 우적우적 여물을 씹어 먹는 그의 모습을 서인은 신기하게 지켜보곤 했다.


입구 왼편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광이 있었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던 서인과 자매들에게 시골 화장실은 아주 큰 문제였다. 참고 또 참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면 그 광에 들어가 볼일을 봐야 했다. 그곳은 서인의 자매들만 사용했던 임시 화장실이었다. 처음엔 들어가기 무서웠지만, 막상 들어가면 바닥과 벽은 반들반들한 갈색의 진흙으로 발라져 있었고, 뽀얀 흙냄새가 감도는 깔끔한 공간이었다. 은은한 노란빛의 작은 등도 달려 있었다. 외삼촌이 그녀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이었다. 볼일을 마치면 외삼촌이 삽으로 그것을 퍼 어디론가 가져가고, 그 자리는 다시 깨끗한 진흙방으로 되돌아갔다.


여덟 식구와 소 한 마리로 시끌벅적하던 외삼촌 댁에는 이제 구십이 다 된 외숙모 한 분만 계신다. 서인이 가평을 다녀온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지나온 모든 것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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